야구인 첫 '대학총장' 박노준 "학창 시절부터 책 읽는 습관이 있었죠"

2021. 3. 13. 09:31■ 스포츠/야구

야구인 첫 '대학총장' 박노준 "학창 시절부터 책 읽는 습관이 있었죠" [엠스플 인터뷰]

이근승 기자 입력 2021. 03. 13.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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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인 박노준, 프로 스포츠인 출신 최초 대학 총장 

-“선수 은퇴 후 미국에서 지도자 수업받으며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느꼈다”

-“운동선수는 공부 안 한다는 고정관념 꼭 깨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박노준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을 때 ‘한때 야구 좀 했었지’란 말 듣고 싶어”

 

안양대학교 박노준 총장. 프로 스포츠를 경험한 인물 가운데 대학 총장 자리에 오른 건 박 총장이 최초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안양]

 

“날짜요? 정확히 기억합니다. 2020년 2월 12일이에요.” 야구인 박노준(58)은 안양대학교 제11대 총장으로 임명된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박 총장은 프로 스포츠인 출신 가운데 최초로 대학 총장에 오른 이다. 2010년 11월 건동대 총장으로 취임했던 방 열 대한민국농구협회(KBA) 회장에 이은 두 번째 스포츠인 총장이기도 하다.

  

박 총장은 선수 시절 그야말로 '톱스타'였다. 선린상고 시절 그는 ‘야구 천재’로 불렸다. 외모도 훤칠해 소녀팬을 몰고 다녔다. 1986년 OB 베어스(1986~1991)에 입단한 박 총장은 해태 타이거즈(1992, 1993), 쌍방울 레이더스(1994~1997) 등을 거치며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했다.

 

KBO리그 통산 1천 16경기에 출전한 박 총장은 2천 920타수 765안타 28홈런 266타점을 기록했다. 타자와 함께 투수로도 활약했던 박 총장은 투수로는 43경기에 등판해 129.1이닝을 던져 5승 7패 7세이브 평균자책 3.13의 기록을 남겼다. 

 

박 총장은 1997년 은퇴 후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1998년부터 2년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토론토 블루제이스, 뉴욕 메츠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엔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2008년엔 선수 출신 최초 프로야구단 단장직(우리 히어로즈)을 맡았다. 박 총장은 2008년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박 총장이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건 그 시기를 지나서다. 박 총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과학기술대학원 스포츠산업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호서대 경영대학원으로 진학해 벤처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 총장은 2010년 호서대 겸임 교수로 교육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우석대 레저스포츠학과 교수를 역임한 박 총장은 2020년 2월 12일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엠스플뉴스가 임기(3년) 3분의 1을 마친 박 총장을 만났다. 

 

은퇴 후 미국 생활 떠올린 박노준 총장 “프로야구 선수로 12년 뛰었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느꼈다”

 

박노준 총장(사진 왼쪽)이 MLB 뉴욕 메츠 인스트럭터 코치로 있을 때 만난 박찬호와 찍은 사진(사진=박노준 총장 제공)

 

프로 스포츠인 출신 최초 대학 총장입니다.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웃음).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해요. 2020년 2월 12일 안양대 총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엠스플뉴스 인터뷰 전에도 미팅이 여러 개 잡혀 있던데요. 학교 관계자가 "기업 CEO만큼이나 매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셔서 건강이 걱정"이란 말을 하더군요.

 

총장이란 자리엔 큰 책임이 따릅니다. 안양대엔 6천여 명의 학생, 교수에 530여 명의 직원이 있어요. 학생들이 양질의 수업을 받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대학생은 무엇이든 꿈꿀 수 있고 이룰 수 있잖아요. 학생들이 미래를 설계하고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학교를 잘 이끌어야 합니다. 교육부 평가를 준비하고 안정된 경영 체계를 구축하는 등 정신이 없어요. 가끔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칠 때가 그립습니다(웃음). 

 

야구가 그립진 않습니까. 

 

총장직을 맡고 나선 프로야구 경기를 본 적이 없어요. 가끔 하이라이트만 봐요. 매일 남들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합니다. 오전 7시면 총장실에 도착하죠. 전날 확인한 서류를 또 한 번 봅니다. 내 실수로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당일 업무를 준비합니다. 정신 차리면 저녁이에요. 프로야구 볼 시간이 없지. 지금은 일이 우선입니다.

 

많은 프로야구 선수가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습니다. 총장님도 은퇴 후 코치 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7년 은퇴 후 2년간 미국 프로야구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어요. 마이너리그부터 메이저리그까지 다 경험했죠. 뉴욕 메츠에선 급여를 받고 일했어요. 인스트럭터 코치를 맡았습니다. 

 

미국 생활은 어땠습니까. 

 

1986년부터 1997년까지 프로야구 선수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신세계였어요. 내가 우물 안 개구리란 걸 느꼈죠.  

 

우물 안 개구리요?

 

미국에서 배운 게 새로운 건 아니에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어릴 때부터 기본기를 강조해요. 기본이 안 된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거나 타석에 들어서는 일은 없습니다. 눈앞의 결과보다 선수 성장에 초점을 맞추죠. 기본기를 다지고 올라설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145년 역사를 가진 미국 야구의 힘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선수가 기본기를 갖출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하면 한국 야구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질 겁니다"

 

박노준 총장은 1997년 선수 은퇴 후 이듬해부터 2년간 미국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사진=박노준 총장 제공)

 

미국 야구의 힘이라. 

 

미국은 기본기 매뉴얼이 있어요. MLB 30개 구단이 이 매뉴얼을 공유합니다. 과학적인 훈련 방법이 등장하면 30개 구단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요. 어떻게 하면 선수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논의하는 겁니다. 그렇게 선수 육성 체계를 잡아나가요. MLB 30개 구단은 경쟁자인 동시에 동반인 겁니다. 또 있어요. 

 

어떤?

 

한국은 선수의 단점을 보완하는 데 시간을 투자합니다. 미국은 달라요. 선수의 장점을 살리는 데 주력합니다. 자기만의 뚜렷한 강점이 생기면 단점은 보이지 않아요. 모든 선수가 홈런타자일 순 없습니다. 어떤 선수는 선구안이 우수하고 또 다른 이는 콘택트 능력이 뛰어나요. 그 장점을 살려서 하나의 팀을 이루는 거죠. 누구든 팀에 꼭 필요한 선수로 성장하는 겁니다. 

 

꼭 야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축구, 농구 등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죠. 공부하는 학생도 다르지 않습니다. 임기응변으로 눈앞의 위기 상황을 넘길 순 있을 거예요. 하지만, 기본을 망각하고 소홀하면 반드시 거꾸러집니다. 한 인간의 성장에 한계점이 생기는 거예요. 다시 프로야구 선수를 예로 들겠습니다. 기본을 소홀히 하면 대부분 부상으로 이어져요. 

 

부상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선수 체형에 딱 맞는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줘요. 각기 다른 체형과 스타일을 가진 선수에게 똑같은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아닙니다. 기본기를 확실히 다지고 내 몸에 딱 맞는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하면 다칠 위험이 크게 줄어요. 그리고 기술을 배우면 성장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릅니다. 구속이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는 투수를 수없이 봤어요. 

 

한국은 다릅니까. 

 

한국도 미국의 선진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학생선수들이 야구를 즐기고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선수의 단점을 고치기보다 장점을 살리려는 지도자가 늘고 있고요. 학생선수가 기본기를 갖출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하면 한국 야구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질 겁니다.  

 

“운동선수는 공부 안 한다는 고정관념 깨고 싶었다”

 

박노준 총장은 학창 시절부터 훈련이 끝나면 늘 책을 읽었다(사진=박노준 총장 제공)

 

1997년 은퇴 후 2년간 미국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대다수 프로야구 선수는 지도자를 꿈꿉니다. 선수 경험이 쌓일수록 팀을 이끌고 싶단 욕망이 생겨요. 저 또한 은퇴 후 KBO리그 코치를 거쳐 감독을 꿈꿨죠. 하지만, 프로야구 현장에서 팀을 이끌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좌절하진 않았어요.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제2의 삶을 고민했죠. 

 

대학교수로 1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마치면 책을 봤어요. 야구하면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책 속에 있었습니다(웃음). 책을 보면서 욕심이 생겼어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고정관념이요?

 

운동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안 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머리에 든 게 없다’는 거지. 한국 운동선수라면 이 얘길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그 말을 듣는 게 싫었어요. 운동선수도 똑똑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대학 진학 시 체육학과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예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도 평생 프로야구 선수로 살 순 없습니다. KBO리그에서 지도자로 살아가는 건 더 어렵고요. 대학 진학 시 은퇴 후 삶까지 고민했습니다. 경영학과가 눈에 들어왔어요. 경영학을 공부하면 향후 선택의 폭이 넓을 것 같았습니다.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일까요. 2008년 우리 히어로즈 단장을 맡았습니다. KBO리그 최초 선수 출신 단장이었습니다. 

 

박노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한 해였습니다(웃음).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해 히어로즈를 창단했어요. 선수단은 물론이고 코치진, 프런트 구성을 도맡았죠. 홈구장(목동야구장) 공사도 책임졌어요. 제일 힘들었던 건 스폰서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스폰서요?

 

히어로즈는 자금력이 우수한 팀이 아니었습니다. 스폰서를 구하지 못하면 구단 존속을 장담할 수 없었어요. 하루하루 심한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밤낮없이 뛰면서 스폰서를 구했죠. 보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참 힘들었습니다(웃음). 많이 배우고 느꼈어요.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죠. 그리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자신감이요?

 

구단을 운영하면서 이론으로 터득한 경영과 실전은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더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2008년을 떠올려요. ‘그때도 잘 버텼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이겨냅니다. 은퇴 후 순탄하게 나아갔다면 대학교수를 거쳐 총장직을 수행하긴 어려웠을 거예요. 후배들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프로야구 선수란 직업은 전문직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KBO리그 무대를 누비는 건 매우 어렵죠. 프로야구 선수가 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매일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해요. 포기하고 싶은 날이 수두룩하지만 버텨야 합니다. 그렇게 성장을 거듭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성공하는 길을 알아가는 거죠. 단,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입니까.  

 

프로야구 선수 박노준이 대학 총장으로 임명될 수 있었던 건 특별해서가 아니에요. 학창 시절부터 책을 놓지 않았어요. 

 

책이요?

 

경기를 마치면 영어 단어를 공부했어요. 구단 버스에선 단어 책을 외우는 게 일이었죠.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을 때 큰 도움이 됐습니다. 궁금한 걸 고민하지 않고 물어볼 수 있었어요. 그 덕에 더 많은 걸 보고 느꼈습니다. 대학 시절엔 일반 상식 책을 보는 게 취미였어요. 

 

일반 상식 책이요?

 

상식 책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의 기초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아요. 비즈니스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에게 늘 강조합니다. ‘지식과 경력을 항상 쌓아야 한다’고 말이죠. 기회는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불현듯 내 앞에 들이닥치죠.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꽉 잡을 수 있습니다. 

 

일반 상식 책만큼 인상 깊었던 책이 또 있습니까.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전기가 또렷이 기억납니다. 두 분은 한국을 대표하는 CEO 1세대입니다. 공통점이 있었어요.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사물을 다방면으로 바라본 거예요. 눈 앞에 펼쳐지는 세상을 사업과 연관 지어서 끊임없이 생각한 거죠. 아차 싶었습니다.

 

아차 싶었다?

 

보통 차를 타고 이동할 땐 멍하니 시간을 보냈습니다. 성공한 CEO는 그 시간마저 활용했어요. 1분 1초를 허투루 보내는 일이 없었던 겁니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다는 걸 배웠죠. 경영학을 공부해서인지 크게 와닿는 게 많았어요.

 

“누군가에게 박노준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을 때 ‘한때 야구 좀 했었지’란 말 듣고 싶습니다”

 

안양대 박노준 총장은 오전 7시면 총장실에 도착한다. 남들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해 전날 업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하루를 준비한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이야기를 듣다 보니 조금 헷갈립니다. 총장님은 야구인입니까. 아니면 교육자입니까. 

 

야구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안양대 박노준 총장은 없었을 겁니다. 야구를 만나 부와 명예를 얻었어요. 야구는 누구보다 약했던 어린이에게 건강한 삶을 선물했습니다. 야구는 박노준의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예요. 

 

뼛속까지 야구인이란 뜻이군요. 

 

야구에서 인생을 배웠습니다. 박노준에게 야구는 인생 교과서예요.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이 뭔지 아세요?

 

뭡니까. 

 

야구는 스포츠 가운데 유일하게 ‘희생’이란 단어가 들어있습니다. 야구에선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이 팀을 웃게 만들어요. 해설위원을 할 때 자주 한 말이 있습니다. 상대편에서 제아무리 뛰어난 선발투수를 내세워도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거예요. 어릴 적 어르신들이 항상 한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말이죠.

 

어르신들은 “살다 보면 최소 3번의 기회와 위기가 찾아온다”고 했어요. 우리네 삶과 야구가 매우 흡사하다는 걸 느낍니다. 기회를 잡는 팀은 승리의 기쁨을 맛봅니다. 기회를 살리지 못한 자는 실패의 쓴맛을 보죠. 야구와의 인연은 평생 갈 겁니다. 비즈니스 자리에서도 “프로야구 선수 박노준입니다”라고 소개해요.

 

이유가 있습니까. 

 

야구인인 게 자랑스러우니까(웃음). 상대가 친근감 있게 받아들이기도 하고요. 

 

누군가에겐 최고의 프로야구 선수이자 해설위원입니다. 또 다른 이에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준 교육자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크게 보면 박노준의 삶은 두 개로 나눌 수 있어요. 5회까진 프로야구 선수로 살았습니다. 6회부턴 교육자로 살아가고 있죠. 경기가 끝나면 ‘야구 선수로 대학교 총장까지 한 사람’으로 기억해주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제일 좋은 건 이겁니다.

 

어떤 겁니까. 

 

누군가에게 박노준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을 때 “한때 야구 좀 했었지”란 말을 듣고 싶어요(웃음). 나 아직 창창합니다. 총장 일을 마무리한 뒤 다시 야구와 함께하지 않을까 싶어요. 해설위원으로 복귀할 수도 있고 언론 매체를 통해 야구와 관련된 지식을 전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야구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보답해야 할 게 많이 남았어요. 최근 유튜브 콘텐츠가 인기죠? 기회가 된다면 유튜브 콘텐츠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웃음). 물론 지금은 아니에요. 당장은 야구인의 명예를 걸고 안양대 발전에만 힘쓰겠습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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