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7. 08:43ㆍ■ 자연 환경/환경 공해
거기 사람 묻혀 있다.. 한라시멘트의 끔찍한 과거
최병성 입력 2021. 01. 27. 07:15 수정 2021. 01. 27. 08:15 댓글 24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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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성 리포트] 자연재해로 둔갑한 인재 사망사고, 진상규명은 아직도
[최병성 기자]
▲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3km나 처참하게 망가진 한라시멘트 광산. |
ⓒ 최병성 |
금방이라도 우르르 무너질 것 같다. 처참히 망가져버린 강원도 백두대간에 있는 한라시멘트광산이다. 생태보고였던 자병산은 이름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국내 다른 시멘트 광산들은 산봉우리 하나를 파내려간다. 그런데 이 광산은 산 능선을 따라 채굴하는 바람에 산림 훼손이 가장 심각하다. 그럼에도 산림청은 백두대간이 무너져가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문제는 산림 훼손에 그치지 않는다. 급경사 사면 채굴 방식 탓에 국내 다른 시멘트광산보다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 위험한 현장임에도 관리 감독 역시 부실하여 언제든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태로운 장면들이 곳곳에서 연출된다.
▲ 상상 이상의 위태로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언제든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안전불감증 현장이다. |
ⓒ 김성만 |
위 사진을 보자. 맨 위 착암기가 발파를 위한 천공 작업을 하고 있다. 바로 밑 좁은 곳에선 로우더가 채굴한 석회석을 64톤 트럭에 상차하고 있다. 그 밑에서는 포클레인이 작업 중이다. 대한민국 석회석 광산 중에서도 가장 위태로운 현장모습이다.
실제 2012년 8월 23일 오후 6시 40분경, 한라시멘트(당시 라파즈한라시멘트) 광산이 무너져 내렸다. 산 정상에 있던 송전탑도 붕괴됐다. 보존되어야 할 마루금(산마루와 산마루를 잇는 선)이 붕괴되며 백두대간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 2012 한라시멘트 붕괴 현장. 채굴 중이던 광산이 무너져 내렸고, 인부들이 매몰되었다. |
ⓒ 동부광산안전사무소 |
갑자기 쏟아져 내린 200만 톤의 돌무더기 아래 3명의 작업자가 파묻혔다.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1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사고 발생 8년이 지난 현재까지 1명의 시신은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저 광산 돌무더기 어디쯤에 깔려 있을 것이다.
▲ 정상에 서 있던 42번 송전탑도 쓰러졌다. |
ⓒ 동부광산안전사무소 |
묻였다가 6년 만에 튀어나온 산림청 보고서
사고 발생 4달이 지난 2012년 11월, 합동조사단은 광산 붕괴 원인을 '자연재해'로 종결지었다. 그런데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던 지난 2018년, 한라시멘트 광산 붕괴가 '인재'였다는 2012년 당시의 산림청 현장조사 보고서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라시멘트 광산 붕괴 의혹 재조사를 요구했다. 검찰청과 국민 권익위 등에도 진정을 넣었다. 진실을 찾기 위한 강원 지역 언론들의 보도도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한라시멘트 광산의 붕괴가 인재라고 판단한 2012년 산림청 조사 보고서를 먼저 살펴보자.
2012년 10월 10일, 지방산림청장과 강릉국유림관리소장 등 관계자 8명과 김남춘(단국대), 전근우(강원대), 이현규(상지대) 교수 등 학계 3명, 사방협회 2명(김민식 박사, 김석우 박사), 그리고 산림기술사 2명과 전 사방협회 부회장 김동권, 전 산림청 치산복원과장 김종선, 전 국립산림과학원 사방전문가 최경 박사 등이 현장을 돌아보고 붕괴 원인에 대해 토론을 했다.
산림청은 '라파즈한라시멘트 광산 붕괴 사고의 원인을 종합해 보면 자연재해로 인한 산사태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며, 인위적 요인에 따른 불안정한 사면을 보강하지 않아 붕괴된 인위적 피해로 판단됨'이라며 인재로 결론 내렸다.
▲ 한라시멘트 광산 붕괴를 인재로 판단한 산림청 조사 보고서. |
ⓒ 산림청 |
인재라고 판단한 산림청 전문가들의 의견은 아래와 같다.
김남춘 단국대 교수 : 사고 현장의 나무들이 먼저 무너진 아래쪽의 토석류에 걸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산사태로 인한 붕괴는 아닌 것으로 판단. 붕괴 원인은 발파로 인한 경사면의 균열, 과도한 채석으로 인한 장대사면이 불안정한 것으로 추정.
전근우 강원대 교수 : 산사태라기보다는 심층 붕괴에 의한 재해로 판단됨.
이현규 상지대 교수 : 자연재해에 의한 산사태로 볼 수 없으며 사면 하단의 훼손에 의한 원인으로 사료됨.
김석우 박사 : 연약지반지역에서 지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산지훼손이 주된 요인.
이처럼 산림청 전문가들은 붕괴 형태와 광산의 채굴 현장을 살펴본 후 모두가 '자연재해'가 아니라 무리한 광산 개발로 인한 '인재'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2018년까지 묻혀 있었다.
하지만 합동조사단은... '자연재해'인가 '인재'인가
산림청의 '인재' 결론과 달리, 합동조사단은 '자연재해'라고 판단했다. 합동조사단이 자연재해로 판단한 근거는 크게 3가지이다.
1. 사면 경사각이 38도로 적합하다.
2. 광산 붕괴 현장이 10년 이상 채광하지 않은 곳이다.
3. 불규칙하게 발달된 석회암 공동에 의한 붕괴다.
▲ 자연재해로 판단한 합동조사단 보고서 |
ⓒ 합동조사단 |
그러나 합동조사단의 자연재해 결론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수많은 의혹들을 안고 있다. '자연재해'와 '인재' 중 어느 것이 맞는지 의혹을 하나씩 풀어보자.
[의혹 ①] 사면 경사각이 38도로 적합하다?
광산 붕괴 이전의 현장 사진들을 지인들에게 수소문했다. 붕괴 전의 사진이 있어야 정확한 붕괴 원인을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01년의 사진을 구했다. 붕괴 11년 전이다. 자병산 정상 방향에서 붕괴되기 전의 광산을 찍은 것이었다. 광산의 모든 소단(bench)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5번 소단으로 덤프트럭이 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계단식 소단은 대한민국 대부분의 석회석 광산 모습이다. 절토한 사면의 안전성을 확보하여 붕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 2001년 현장. 2012년 8월 붕괴되기 11년 전 모습이다. 소단들이 모두 안정되게 남아 있고, 5번 소단으로 덤프트럭이 지나가고 있다. |
ⓒ 녹색연합 |
그런데 한라시멘트광산 붕괴 원인을 입증할 결정적인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 정확히 광산 붕괴 5달 전인 2012년 3월 27과 28일 찍은 두 장의 사진이다. 2001년에 덤프트럭들이 다니던 소단들이 모두 사라졌다.
▲ 붕괴 5개월 전인 2012년 3월 28일 촬영한 현장 사진. 계단식을 이루던 소단들이 채광으로 모두 사라졌다. |
ⓒ 김성만 |
지난 기사(아파트 어떻게 지어지는지 알면 놀랍니다, http://omn.kr/1rff0) 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 광산의 특징은 석회석 품질이 낮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품위 석회석을 외부의 다른 광산으로부터 가져온다. 고품위 석회석을 운반하는 덤프트럭들이 오가는 소단 하나만을 남겨두고 모든 소단이 사라졌다. 언제든 붕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태로운 급경사가 된 것이다.
합동조사단은 붕괴된 사면이 38도로 안정되었기에 자연재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붕괴 5개월 전인 2012년 3월 27일 사진(아래)을 보자. 사진의 1번, 2번, 3번 벤치를 깎아 수직에 가까운 벽을 만들었다. 최소 70도에 이른다. 4번, 5번, 6번 벤치도 깎아 급경사의 가파른 벽을 만들었다. 4~6번 소단 흔적은 남아 있지만, 눈이 흘러내릴 만큼 수평면이 존재하지 않는 급경사다. 최소 65도에 이른다. 붕괴 현장은 합동조사보고서의 주장처럼 38도의 안정된 경사면이 아니었다. 연속된 계단식 소단들을 발파해 채광함으로써 언제든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급경사 사면이었다.
▲ 붕괴 5개월 전인 2012년 3월 27일 사진 |
ⓒ 김성만 |
[의혹 ②] 붕괴된 곳은 이미 10년 전 채광이 종료된 지점이다?
합동조사단은 붕괴된 광산이 이미 10년 전에 채굴이 종료된 곳이라며, 이를 자연재해의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붕괴 직전까지 10년 동안 채굴이 계속 진행된 증거들이 많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소단들이 살아 있던 2001년 사진과 소단이 모두 사라진 붕괴 5개월 전의 사진이 이를 증명한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다. 다음카카오의 항공지도다. 사고 장소의 2008년, 2012년 항공사진을 비교해보았다. 2008년 사진에서 공사 차량이 오가던 1번 도로는 붕괴된 송전탑이 있는 바로 아래지점이다. 2012년 사진에선 1번 도로가 사라졌다.
▲ 2008년과 2012년 현장 비교. 붕괴된 송전탑 아래에서 2012년 붕괴 전까지 계속 채광해왔음을 알 수 있다. |
ⓒ 카카오맵 |
외부의 다른 광산으로부터 고품위 석회석을 실어 나르는 2번 도로를 살펴보자. 2008년 사진에서는 1번과 2번 사이의 간격이 넓으나, 2012년 사진에서 2번 도로가 붕괴된 사면인 1번 쪽으로 올라왔다. 2번 도로 위와 아래 모두 채굴하여 소단들이 사라지고 정상 쪽으로 급경사를 만든 것이 확인된다. 이렇게 채굴하기 위해서는 계속 발파를 해야 한다. 특히 수평면이 좁아진 소단은 수직면에 직접 천공을 하고 발파를 한다. 절토된 급경사면 전체에 폭약 발파의 충격이 계속 가해지는 것이다.
2008년 사진에선 2번 도로 아래쪽 3번 도로가 선명하게 살아 있다. 그러나 2012년 사진에서는 3번 도로가 사라지고, 2번 도로 방향으로 깊숙이 파먹고 들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사진 좌측 2-1, 3-1 도로가 2012년 사진에 보이지 않는다. 모두 채광으로 사라졌다.
2008년 사진 붉은색 글씨 A지점과 2012년 사진의 A지점을 비교해보자. 위쪽으로 계속 채굴하여 심각한 경사면을 만들어 낸 것을 알 수 있다. B지점 역시 2008년엔 3개의 도로와 완만한 경사였다. 그러나 2012년엔 붕괴된 사면 쪽으로 올라오며 수직형의 급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이게 모두 2008~2012년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도 합동조사단은 붕괴 지역에 10년 동안 채광이 없었다며 자연재해를 주장했다.
▲ 2010년 카카오항공지도다. 붕괴된 송전탑 바로 아래에서 계속 채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 카카오 항공지도 |
2010년 다음카카오 항공사진을 보자. 등고선이 보여주듯 빨간점이 정상이다. 정상 우측 아래 동그라미에 2012년 8월 붕괴된 송전탑(A)이 위치하고 있다. 빨간 네모 1번에 착암기가 천공 작업 중이다. 천공을 했으니 당연히 이곳에 발파를 했을 것이다. 계속된 발파로 소단이 사라지고 급경사를 만들었음은 변화된 2012년 사진이 증명한다. 빨간 네모 2번이다. 착암기로 발파한 돌들을 로우더로 64톤 트럭에 상차하고 있다. 빨간네모 3번은 외부로부터 고품위 석회석을 실어 나르는 트럭이다. 이들은 이곳을 오가며 붕괴 사면에 계속 진동을 주었다. 그리고 3번 좌측 화살표는 붕괴 사면 방향으로 계속 파들어 오는 채굴 현장을 보여준다. 2012년 8월 붕괴된 돌무더기에 깔린 인부들이 작업 하던 위치다.
이런 명백한 사실에도 합동조사단은 광산 붕괴가 정상에서 시작되어 작업장과 거리가 멀고 당일 발파가 광산 붕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했다. 당시 라파즈한라시멘트가 작성한 복구 계획서에 따르면, 이날 붕괴 사고로 덤프트럭 2대, 로우더1대, 굴착기 1대, 착암기 1대의 피해를 입었다. 인명 피해는 착암기 운전원 매몰 사망, 덤프트럭 운전원 매몰 실종, 부상 1명이다. 착암기란 폭약 발파를 위해 암반에 구멍을 뚫는 기계다. 붕괴된 그날도 착암공이 작업 했다는 것은 붕괴 지역 아래에서 발파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사망한 착암공 김OO 유족과의 3억5천만원의 배상금 합의서. 당일 착암 공사를 했다는 것은 발파 작업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 한라시멘트 |
바로 이 현장에 매몰되었다가 구조된 생존자 홍종남씨가 이 사실을 증언한다. 지난 1월 16일 강릉에서 생존자 홍종남씨를 만나 붕괴 사고가 발생한 그날의 상황을 상세히 들었다.
그는 64톤 트럭 운전수였다. 포클레인으로 부서진 돌을 담아 주면 옮기는 일을 했다고 증언했다. 포클레인 기사는 무너져 내리는 돌무더기에 포클레인이 뒤로 밀리며 다행히 살아났지만, 자신은 트럭 바퀴에 돌이 걸려 도망가지 못해 돌무더기에 깔렸다가 구조되었고, 착암공은 매몰되어 사망한 것이라고 그날의 상황을 설명했다.
▲ 무너진 돌더미에 깔렸다가 구조된 홍종남씨가 그날의 붕괴 현장 사진을 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 최병성 |
[의혹 ③] 공동에 의해 붕괴된 자연재해다?
합동조사단은 광산 붕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석회암 공동을 지목했지만, 전기 비저항 탐사까지 했음에도 공동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결국 '공동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석회암 공동에 의해서 무너졌다면 공동의 존재를 밝혀야 한다. 그런데 공동을 추정했다. 전기 비저항 탐사까지 했는데 공동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사고 11년 전 붕괴 예고한 논문
▲ 소단을 모두 채광하여 수직으로 변한 절토사면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울어진 절리(틈새)들이 수없이 발달되어 있다. |
ⓒ 김성만 |
붕괴 5개월 전에 찍은 사진을 자세히 살펴봤다. 사선으로 기울어진 절리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시루떡을 켜켜이 쌓아 놓은 듯, 암석에 생긴 '갈라진 틈'을 '절리'라고 한다. 절리가 있다는 것은 그곳의 암석이 과거 비틀림 같은 물리적인 변화를 겪어 암석의 연속성이 끊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편 언덕 멀리에서 찍은 사진임에도 절리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절리 틈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반을 절토하더라도 최소한의 소단들이 남겨졌다면, 절토된 암반이 밀려 붕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절리가 발달된 위험한 암반을 소단 없이 수직으로 채광하고 폭약으로 발파하고 고품위 석회석을 옮긴다며 무거운 덤프트럭들이 오가며 진동을 주었다면? 이런 상황에선 빗물이 절리와 단층 사이로 스며들어가 결국 암반이 밀리며(sliding)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한라시멘트 광산의 붕괴 위험을 이미 2001년에 경고한 보고서를 찾아냈다. 강원대 임한욱 교수는 한라시멘트광산의 안전성을 조사한 후 2001년 '수치해석에 의한 석회암 채굴 사면의 안전성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붕괴를 경고했다.
▲ 한라시멘트 광산 42번 송전탑의 붕괴를 2001년 경고한 논문 |
ⓒ 임한욱 교수 |
일부 구간에서 지층의 경사와 평행하게 조성된 계단에서는 대규모 미끌림(sliding) 붕괴가 우려된다. 계단 조성 과정에서 지층을 절단하여 노출된 불연속면이나 층리 사이로 우수의 침투와 대형 중장비의 지속적인 통행으로 침투수에 의한 점착력 약화와 장비 통행, 발파진동 등 외력에 의하여 층리가 피로한계에 도달하면 사면 붕괴가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임 교수는 이 보고서에서 2012년 8월 붕괴된 42번 송전탑의 붕괴를 미리 경고하며 대책 마련을 제시하기도 했다.
옥계 광산의 채굴 사면 중 안전성이 가장 우려되는 (곳은) 42번 철탑하부 2~3개 계단과 SL440 통행로 끝자락 부분으로 대체로 그 길이는 150m, 높이가 58m 되는 구간인데... 사진 중앙부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부분적으로 소규모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 안정적인 사면 유지를 위해서는 사면의 높이를 58m에서 45m로 축소하고, 구배 역시 70도에서 55도 내외로 조정하면 절리의 방향과 강도를 고려할 때 사면의 안전율이 약 1.3으로 예상되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2001년 임한욱 교수가 지적한 42번 송전탑 주변 광산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사진을 찾았다. 99년 5월 13일자 <한겨레21> '아, 자병산'이라는 기사였다. 임한욱 교수의 지적처럼 송전탑 아래 사면 경사가 심하고, 소규모 붕괴가 일어나고 있었다.
99년 5월 <한겨레21> 기사 속 사진(위)과 2012년 3월 27일 사진(아래)을 비교해보자.
▲ 소규모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1999년 5월(한겨레21)과 2012년 3월 27일 붕괴 5개월 전의 사진. 소단들이 모두 채광된 급경사로 붕괴 위험이 더 높아졌다. |
ⓒ 한겨레21. 김성만 |
임한욱 교수는 2001년에 42번 송전탑 아래 부분의 붕괴를 지적하며 소단의 높이를 줄이고, 경사도를 낮추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2012년 3월 사진에서 보듯, 한라시멘트는 오히려 붕괴되고 있는 사면 아래와 주변에 남아 있던 소단들을 모두 채굴하여 급경사를 만들었다. 붕괴를 대비한 것이 아니라 붕괴를 촉진하는 무리한 공사를 계속해온 것이다.
광산 붕괴 형태도 합동조사단의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한다.
합동조사단은 정상 부위부터 무너진 자연재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 정상 송전탑 주변의 나무들이 놀랍게도 그대로 서있다. 합동조사단의 주장처럼 정상에서부터 쓸려 내려오는 일반적인 산사태가 아니었다. 무리한 발파와 채광으로 인해 중간에 절토된 사면이 먼저 미끌림(sliding) 붕괴 후, 그 위로 정상의 나무들이 주저앉은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산림청 조사단 전문가들이 인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 정상이 70m나 무너져 내렸는데, 정상에 있던 나무들이 그대로 서 있는 형태다. 이는 정상부터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라, 중간에 암반이 먼저 무너지고 그 위에 정상 부분이 주저 앉은 것을 의미한다. |
ⓒ 동부광산안전사무소 |
한라시멘트의 복구계획서는 산 정상이 무너져 내린 높이가 70m라고 기록하고 있다. 무려 70m나 무너져 내린 나무들이 그대로 서 있다면 과연 이게 정상 부위부터 무너진 산사태일까? 결코 아니다.
▲ 한라시멘트 복구 계획서에 산정상이 70m무너졌다고 기록. 이 사진에서도 정상 부위는 중간 무너진 부위에 그대로 주저 앉아 있다. |
ⓒ 한라시멘트 |
한라시멘트 붕괴 사고가 인재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또 다른 사진을 보자. 노란 동그라미 지점에 '암반 붕락 위험'이 있다고 기록했다. 소단들을 깎아 90도 수직 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붕괴된 현장 역시 이처럼 소단들을 절취하여 수직벽으로 만든 곳이다.
▲ 한라시멘트가 만든 복구 계획서에 붕괴돤 사면 좌측도 붕괴될 수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계단형 소단들을 없애고 수직벽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
ⓒ 한라시멘트 |
한라시멘트가 광산 붕괴 직전인 2012년 5월 동부지방산림청에 제출한 '국유림 대부기간 갱신 신청서'를 입수했다. 사업계획서에 채광 방법으로 '상부에서 하부로 채굴 진행하면서 LEVEL-DOWN하는 노천 계단식 채굴 방법이며, 1차 천공, 발파하여 상차 장비인 LOADER A 등을 이용 적재하여 대형 덤프트럭 장비로 파쇄시설까지 운반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핵심은 이어진 한라시멘트의 '복구 계획'이다. '채광장의 높이는 최대 20m 이하로 하고 폭은 8~12m 정도'로 하고, 작업장의 전체 경사도는 최대한 완경사로 하겠다고 되어 있다.
▲ 한라시멘트는 높이 20m 폭 8~12m의 계단식 소단 채광이 안전함을 잘알고 있다. |
ⓒ 한라시멘트 |
한라시멘트는 소단의 높이 최대 20m, 폭 8~12m를 유지해야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붕괴된 사면엔 8~12m 폭의 소단은 고사하고 모조리 채광해서 수직벽을 만들었다.
합동조사단은 왜 자연재해라고 했을까?
그런데 합동조사단은 왜 자연재해라고 결론 내렸을까? 합동조사단 구성 및 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합동조사단 구성은 동부광산보안사무소 보안관 3명, 한국지질자원연구원 3명, 강릉경찰서 강력형사팀 6명 등 총 12명이다. 동부광산보안사무소 보안관들은 지질 전문가도 아니며, 인재로 판명될 경우 관리 부실의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들이다. 강릉경찰서 강력계 형사들 역시 지질과 산사태 전문가가 아니다.
합동조사단의 전문가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정소걸 박사(암반)와 최영섭(지질), 송원경(사면) 총 3명이 전부다. 합동조사단 보고서는 이들의 의견을 그대로 베껴 놓은 것이다.
그런데 2018년 12월 14일 방송된 MBC영동 '라파즈한라시멘트 광산 붕괴 의혹' 편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의 충격적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현장에 가서 한 번만 회의를 했고, 특히 한라시멘트에서 붕괴 현장은 별도로 강원대 이상은 교수에게 맡기고 나머지 안전해 보이는 곳을 조사해달라고 해서 사고 구역은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9년 6월 12일 방송된 KBS 강원방송 <시사토크 강냉이> '붕괴된 진실 2012년 옥계 시멘트 광산은 왜 붕괴되었나' 편에서도 MBC와 같은 충격적인 내용이 방송되었다. 이날 방송에서 합동조사단 보고서에 등장하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A박사는 '거기 가서 회의 한번 했다. 그 지역은 내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라고 했고, B박사는 '원인에 대해서 그 합동조사에서 최종 결론을 내지 않았고, 낼 수도 없다. 하루 조사 해가지고 결론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합동조사단 자연재해 결론에 의혹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합동조사보고서엔 1~2차에 걸쳐 38일간 조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인터뷰처럼 합동조사단은 단 하루, 단 한번 모임을 했을 뿐이라는 의혹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합동조사단 보고서를 쓴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정소걸 박사의 연구 내역을 보자. 합동조사 결론 발표는 2012년 11월에 있었다. 그런데 정 박사는 광산 붕괴 합동조사가 한창인 2012년 10월 5일부터 2013년 6월 30일에 라파즈한라시멘트로부터 3억 5천만 원, 또 비슷한 기간인 2013년 2월 27일부터 6월 30일에 라파즈한라시멘트로부터 3억 원 등 총 6억 5천만 원의 용역비를 받고 '라파즈한라 석회석광산의 사면 안전성 평가 및 대책 수립연구'를 작성했다.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정소걸 박사가 라파즈로 부터 6억5천만원의 용역을 했다. |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
게다가 합동조사단의 1차 보고서는 '강원대학교에서 본 사고를 용역 중으로, 결과가 나오는 대로 검토할 예정'이라며 강원대학교 조사 결과를 가지고 사고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했다. 강원대학교에서 용역 중인 보고서란 한라시멘트가 강원대 이상은 교수에게 1억 2천만 원을 주고 맡긴 용역이었다.
▲ 합동조사단 스스로 조사하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한라시멘트가 용역을 준 강원대 보고서를 검토한 후 판단하겠다는 이상한 계획을 담고 있다. |
ⓒ 합동조사 보고서 |
2012년 11월 15일 발표한 합동조사 2차 보고서는 강원대학교 조사 보고서 내용을 검토했다면서 강원대학교 보고서를 요약한 내용으로 대신했다.
▲ 합동조사단 2차 보고서. 한라시멘트가 1억2천만에 발주한 강원대학교 용역보고서를 그대로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 |
ⓒ 합동조사단 |
결국 한라시멘트 광산 붕괴 합동조사단의 보고서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검토의견으로 갈음했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한라시멘트가 용역을 준 강원대학교 보고서 요약을 한 게 전부다. 광산 사고 발생 주체인 한라시멘트가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만든 용역 보고서를 합동조사단이 어떤 검증도 없이 그대로 인용하며 자연재해로 결론지은 것이다.
사실 합동조사단은 자체적으로 한라시멘트의 용역 보고서를 검증할 능력도 없었다. 3명의 광산보안관과 6명의 경찰서 강력계 형사는 전문가가 아니었고, 3명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중 두 사람은 1번 회의에 참석했을 뿐 사고 현장 조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사람은 강원대학교 용역 보고서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검토의견으로 제출하여 합동조사단 보고서가 되게 했다. 그럼에도 자연재해라는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놀라운 일은 또 있다. 라파즈한라시멘트로 부터 1억 2천만 원을 받고 광산 붕괴 원인 용역을 한 강원대 이상은 교수는 바로 그 직후 또 다시 라파즈한라시멘트로 부터 총 2억 1천만 원의 용역비를 받고 '광산내부 지질조사와 안전수립대책수립'(2013.3.20.~9.19)(1억 3천만 원)과 '옥계 석회석 광산의 채광 발파에 따른 복구 사면의 안전성 해석'(2013.6.1.~12.31)(8천만 원) 등 두 개의 보고서를 썼다.
▲ 강원대 이상은 교수가 한라시멘트로 부터 2억1천만원의 추가 용역을 한 내용 |
ⓒ 강원대학교 |
이처럼 합동조사단의 보고서는 광산 붕괴에 대한 원인 조사이기보다는 한라시멘트의 책임을 면제해주기 위해 '자연재해'로 결론짓기 위한 상상과 추론으로 가득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라시멘트가 얻은 이득
합동조사단의 자연재해 결론은 광산 관리부실에 대한 형사 처분을 면하게 하는 등 라파즈한라시멘트에 엄청난 이득을 안겨주었다. 합동조사단의 자연재해 결론 덕에 '처벌'이 아니라 오히려 210억 원이 넘는 보험금을 받았다는 보도도 쏟아졌다.
1990년 출발한 한라시멘트는 1999년 IMF 때 파산, 2000년 프랑스 라파즈시멘트가 인수하여 라파즈한라시멘트가 되었고, 2018년 아세아시멘트가 인수하여 한라시멘트로 다시 변경되었다.
한전은 붕괴된 42번 송전탑과 전력선 41~43호 541m 복구비 총 37억 원에 대해 2013년 6월 27일 라파즈한라시멘트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2014년 6월 17일 자연재해라는 이유로 13억 원만 배상토록 강제 조정했다. 결국 송전탑 복구를 위해 국민 세금 24억 원이 새나간 것이다.
1984년부터 한라시멘트에서 덤프트럭 운전사로 28년째 근무하던 홍종남씨는 무너진 돌무더기에 묻혔다가 기적처럼 살아났지만 갈비뼈와 늑골과 팔과 다리 등이 부러져 2년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 갈비뼈와 늑골과 팔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2년간 병원신세를 져야했는데, 회사는 사과와 보상을 하지 않았다. |
ⓒ 홍종남 |
그의 병원 진단서에는 좌측 대퇴골 골간 골절 등 12가지 병명이 적혔다. 그 엄청난 돌무더기에 깔려 살아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러나 산재 처리만 되었을 뿐, 지금까지 회사의 사과는 물론 보상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광산 붕괴 원인이 자연재해라는 합동조사단의 조사 때문이었다.
지난 1월 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을 제정 의결했다. 그러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청부 용역에 의해 인재가 자연재해로 둔갑하면 처벌은커녕 보상도 받지 못하는 억울한 노동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오늘도 백두대간은 한라시멘트의 광산 채굴로 처참히 망가지고 있다. 백두대간 보존을 위한 정부의 대책 마련과 광산 붕괴 진실 규명이 시급하다.
▲ 무리한 채광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이 붕괴되었다. 42번 송전탑이 무너져 우측으로 이동했다. 아직 저 아래 어딘가에 사망한 노동자 시신이 묻혀 있다. 그런데 아무도 처벌받은 사람이 없다. |
ⓒ 최병성. 다음 항공지도 |
덧붙이는 글 | 이날 광산 붕괴 진실을 알고 계신 분들의 사건 관련 제보를 기다립니다. 또 다른 환경 문제 제보도 기다립니다.
연재 최병성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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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사람 묻혀 있다.. 한라시멘트의 끔찍한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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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수1시간전
2012년은 돈에 미친 쥐새끼가 활개칠때였지.아마.
답글1댓글 찬성하기166댓글 비추천하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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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보1시간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현토부는 언제 철이 드니
답글 작성댓글 찬성하기29댓글 비추천하기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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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58분전
쥐박이 당시 건축 토목 분야는 그야말로 5공화국 수준 이었어요. 4대강 모래가 얼마나 퍼올려진건지도 파악 못하고요. 그린벨트 지역 따위 어지간하면 다 허가해주고요. 경제 살린답시고 토목분야 활성화 하느라 눈 감아주고 허가해준게 어디 한둘 뿐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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