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승용차 타고 도착한 곳은 '헌혈의 집'이었다

2020. 12. 19. 10:33■ 건강 의학/의료 시스템

[아무튼, 주말] 최고급 승용차 타고 도착한 곳은 '헌혈의 집'이었다

유종헌 기자 입력 2020.12.19. 03:04

"피가 너무 부족해"
혈액관리본부는 '피와의 싸움' 중

지난 17일 오전, 서울 관악구 빌라촌으로 흰색 제네시스 G80 한 대가 진입했다. 운전석에서 내린 기사 이광식(63)씨가 손님을 깍듯이 맞았다. 마치 기업 임원 출근길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아니다. 이 차량의 도착지는 구로구 헌혈의 집. 운행 목적은 손님을 헌혈 장소까지 안전히 모시기다.

이 차의 정체는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가 운영하는 ‘프라이빗 픽업 서비스’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외부 활동 인구가 줄면서 혈액 수급량이 부족해지자, 혈액관리본부는 지난 11월부터 헌혈자가 집부터 헌혈 장소까지 외부인 접촉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17일 김장헌(18)군이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구로구 헌혈의 집까지 ‘프라이빗 픽업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 혈액관리본부는 사전 신청을 받아 헌혈자를 헌혈 장소까지 이동시켜주는 이 서비스를 지난달 시작했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날 차량에 탄 헌혈자는 올해 수능을 본 고등학교 3학년 김장헌(18)군. 이번이 세 번째 헌혈이라는 김군은 “코로나로 바깥 외출이 줄다 보니 헌혈에 관한 관심도 줄었는데, 차량으로 헌혈의 집까지 태워준다는 말을 듣고 바로 신청했다”면서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너무 좋은 대접을 받게 돼 쑥스럽다”고 했다.

올 겨울, 혈액관리본부는 ‘피와의 싸움’을 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헌혈 인원이 줄면서 혈액 보유량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 헌혈자 수를 늘리기 위해 ‘픽업 서비스’까지 도입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헌혈자 실어나르는 ‘픽업 서비스'까지

올 한 해는 혈액관리본부에 유독 힘든 해였다. 유례없는 감염병 사태로 헌혈자 수가 줄어든 탓이다. 특히 일선 학교가 대면 수업을 중단하면서 고등학교·대학교에서 이뤄지던 학교 단체 헌혈이 급감했다. 지난 16일까지 헌혈에 참여한 전체 인원은 249만여명. 혈액관리본부는 연말까지 남은 2주의 시간을 감안해도 올해 총 헌혈자 수가 작년(279만여명)보다 20만여명(약 7.2%)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중앙부처와 지자체 등에 단체 헌혈 협조를 요청해 공공기관 헌혈 실적이 지난해보다 두 배가량 늘었고, 일선 대대급까지 군 장병 헌혈을 독려한 덕에 군부대 헌혈도 6%가량 늘었지만 전체 헌혈자 수 감소를 막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프라이빗 픽업 서비스’는 개인 헌혈자 수를 늘리기 위한 ‘기프트카 레드카펫 캠페인’의 일환이다. 현대자동차가 제공한 9대의 차량이 내년 6월까지 전국을 돌며 헌혈자를 헌혈의 집으로 실어나른다. 혈액관리본부는 내년 초부터 ‘프라이빗 헌혈 서비스’도 시작한다. 차량 내부에서 헌혈할 수 있도록 개조된 소형 차를 신청자 집 앞까지 보내 가족·소규모 모임 단위 헌혈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12월이 혈액난 ‘최대 고비’

문제는 당장 이번 달이다. 코로나 3차 대유행에 한파까지 겹치면서 혈액 보유량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혈액 보유량은 3.4일(14일)→3.1일(15일)→2.8일(16일)로 계속 감소 추세다. 특히 지난 16일은 혈액 보유량이 3일 미만으로 떨어져 혈액 수급 위기 단계 중 ‘주의’ 단계로 들어섰다. 안정적인 의료 활동에 필요한 적정 혈액 보유량은 5일 치.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5600명 이상의 헌혈이 필요한데, 최근 일주일간 하루 평균 헌혈자는 440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실제 지난 15일 오후 방문한 서울 종로구 광화문 헌혈의 집은 한적했다. 퇴근 시간인데도 채혈 침대 여섯 개 중 헌혈이 진행 중인 침대는 한 곳에 불과했고, 15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대기 좌석에도 헌혈을 마친 시민 세 명만 앉아 있었다. 헌혈의 집 관계자는 “날이 추워 시민들이 평소의 절반밖에 찾지 않았다”고 했다. 혈액관리본부는 “최근에는 등록 헌혈자를 대상으로 헌혈 호소 문자를 보내고 있을 정도로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조남선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장은 “혈액 보유량이 2일분 미만이 되면 응급수혈 외에는 가용할 혈액 재고가 없어 병원 수술이 취소되는 등 국가 재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혈액은 인공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만큼 국민들이 꼭 헌혈에 참여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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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이이잉이3시간전

    조선일보 유종헌기자야. 이거 쓸 시간에 너는 헌혈했냐?

    답글15댓글 찬성하기427댓글 비추천하기83

  • 이점식3시간전

    역시. 궁하면 통하는구만. 굿 아이디어. 헌혈자들 대우 더 개선해라. 돈은 이런데 사용해라. 공무원 초과수당 공로연수 등. 눈먼데 돈 쏟아붓지 말고 으 이.

    답글1댓글 찬성하기221댓글 비추천하기18

  • 해일3시간전

    조선 방씨일가 헌혈좀 할생가ㄱ 없나 사회악

    답글6댓글 찬성하기149댓글 비추천하기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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