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파 스토리]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한 시즌 두 번 등정

2020. 10. 26. 10:13■ 등산/山岳人

[셰르파 스토리]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한 시즌 두 번 등정

글 서현우 기자 입력 2020.10.26. 09:55 수정 2020.10.26. 10:00

7일 만에 두 번 올라 기네스북에..故 필립 휴즈 유품 갖고 에베레스트 도전

세계 여성 최초로 단일 시즌에 에베레스트를 두 번 등정한 기록은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이듬해 기네스북으로부터 증명서를 받는 추림 셰르파. 사진 네팔리오스트레일리안

부모가 운영하는 작은 호텔에서 바닥을 쓸고, 설거지를 하던 26세의 여성 셰르파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녀는 네 명의 자매를 포함한 대부분의 네팔 여성들처럼 딱히 꿈도 없었고, 부모를 도와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문득 높은 산을 오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릴 때부터 캉첸중가(8,586m)를 보며 자란 데다 초등 5학년이던 1993년, 파상 라무 셰르파가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소식이 전해졌을 때 느꼈던 감동의 씨앗이 느닷없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3년 뒤, 그녀는 어린 시절의 꿈을 좇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다.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이처럼 평범한 네팔 여성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이는 추림 도르마 셰르파Chhurim dolma sherpa다. 네팔어로 추Chhu는 물을, 림rim은 산을 의미한다. 네팔 북동부 타플레중Taplejung에서 태어나고 자란 추림은 “우리 마을에서는 캉첸중가가 올려다 보인다”며 “캉첸중가를 등반하려는 산악인들이 우리 마을을 지나갈 때면 나도 그들과 똑같이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제로플라스틱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추림 셰르파.

하지만 그런 꿈도 잠시였을 뿐, 추림은 뭇 네팔 여성들처럼 적당히 학교를 다니다가, 적당히 집안일을 돕는 삶을 10년 넘게 살았다. 그녀는 인근에 9학년 이상 과정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어 8학년까지만 다니고 학업을 더 이어나가지 못했다.

추림이 고산등반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것은 2009년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집안에서만 일하지 않고 꿈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다른 3명의 형제들은 모두 고산등반 포터로 일하는데, 4명의 자매들은 모두 집안일을 돕고 있는 현실이 부조리하다고 여겼다. 그녀는 “이때까지 네팔에서 에베레스트를 성공적으로 등반한 사람 3,842명 중 여성은 219명에 불과하며, 심지어 네팔인은 21명에 그친다”고 말했다.

결심한 이듬해인 2010년, 그녀는 카트만두에 사는 여동생의 집을 찾았다. 그리곤 네팔등산협회에서 운영하는 기본 등산 교육 과정에 등록했다. 심리적, 신체적, 기술적 훈련을 받으며 2년 동안 암벽 등반과 응급 처치 기술을 연마했고, 트레킹 피크로 널리 알려진 네팔 랑탕의 얄라 피크(5,520m)도 올랐다.

처음에는 추림의 도전을 반대하던 부모도 그녀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극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아버지 단두 셰르파는 “도저히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추림의 가족들은 그녀의 꿈을 지지해 주기 위해 약 4,000달러(약 473만 원)에 달하는 등반 비용을 제공했다. 그간 모았던 저축으로도 모자라 친구와 친척에게 대출까지 받았다.

추림 셰르파가 훈련 중 피켈을 들고 웃고 있다.

“자신과 네팔 여성의 힘 증명”

2012년 5월, 추림은 대망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시작했다. 다른 등반가 4명과 함께 원정을 시작, 5월 12일에 정상에 섰다. 추림은 “14kg의 산소통과 식량을 짊어지고 거친 눈보라를 뚫고 미끄러운 얼음 사면을 오르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며 “종국에는 내가 누군지에 대한 자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다른 등반가들과 함께 순조롭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추림은 정상에 15분간 머물며 하나님과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고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내려갔다. 그녀는 “베이스캠프에 내려가자마자 한 번 오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등반가들에게 한 번 더 정상에 등정하려는 의지를 전하자 모두 “너무 위험하다. 한 등반 시즌에 에베레스트를 두 번 연속 오른 여성 등반가는 없다”며 극구 만류했다.

선례가 없다는 말은 오히려 추림의 열정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그녀는 “나 자신과 네팔 여성의 힘을 증명하기 위해 특별한 등반을 하고 싶었다”며 이틀간 휴식을 가진 후 다시 정상을 향했다. 이번에는 단 한 명의 등반가 체링 덴둡Tshering Dhendup만 동행했다. 체력적으로 소모가 크고, 동행하는 등반가도 줄어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추림은 순조롭게 등반을 이어가 5월 19일에 다시금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여성 최초 단일 시즌 에베레스트 연속 등정 기록이 수립되는 순간이었다. 체링은 “그녀는 건강하고 단단했다”며 “추림이 기록을 수립하는 순간을 함께해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2015년 국제산악연맹총회 당시 한국에 입국했던 추림 셰르파가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과 속초 국립산악박물관에서 만났다.

기록을 수립한 후 추림은 원정대행사에서 근무하며 주로 캉첸중가 지역의 트레킹 가이드로 일했다. 2015년 4월에는 다시 한 번 기념비적인 에베레스트 등반을 추진했다. 2014년 11월 경기 도중 공에 맞아 사망한 호주의 유명 크리켓 스타 선수인 필립 휴즈의 배트와 유니폼을 에베레스트 정상에 가져가 추모하고, 다시 갖고 내려와 네팔 주재 호주 대사관에 전시한다는 계획이었다. 크리켓은 네팔에서도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이다. 추림은 이를 위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입성했으나 2015년 2월 25일 네팔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대지진으로 인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추림은 고산등반은 중단한 채 제로플라스틱 운동과 고향 청소년들의 교육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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