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이 샘솟는 올해의 기상사진들

2020. 10. 22. 11:07■ 사진/공모 사진전

상상력이 샘솟는 올해의 기상사진들

곽노필 입력 2020.10.22. 10:16 수정 2020.10.22. 10:36

영국 왕립기상학회 공모전 수상작 발표
대상엔 눈보라 속의 뉴욕 브루클린다리

대상작 ‘블리자드’. Weather Photographer of the Year 2020

“강한 눈보라를 맞으며 다리를 건너고 있는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생계를 위해 출근하는 노동자일까, 아니면 거리 구경에 나선 관광객일까? 이 순간 그들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으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영국 왕립기상학회(Royal Meteorological Society)가 주최한 ‘올해의 기상사진’ 공모전에서 뉴욕 브루클린 다리의 눈보라 사진이 대상에 선정됐다. 5회째인 올해는 전 세계에서 7700여점이 출품됐으며, 이 가운데 15개국 26편이 결선에 올랐다.

대상을 받은 사진작가 루돌프 술간(Rudolf Sulgan)은 “2018년 겨울 기상이변 현상을 부른 엘니뇨 기간 중 뉴욕에 강한 블리자드(눈보라 강풍)가 휘몰아쳤을 때 찍은 사진”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사진이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작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미국 기상청은 블리자드를 ‘시속 35마일 이상의 바람에 눈발이 날려 최소 3시간 동안 시정거리가 4분의1마일 미만인 상태를 야기하는 강풍'이라고 정의한다. 심사위원 마크 보드맨은 “악천후에 맞서는 사람들의 사진은 언제 봐도 나를 매료시킨다”며 “이런 사진은 여러분에게 보고, 생각하고, 몽상할 거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1등상 ‘차밭 언덕’. Weather Photographer of the Yea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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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를 보는 듯…이른 아침 안개 속 녹색 차밭

1등상은 베트남 북부 내륙 푸토성의 차밭 언덕 사진이다. 아침 해뜨기 전 안개에 둘러싸인 초록색 차밭 언덕 무리가 신비감을 더해준다. 이른 아침, 찻잔을 들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은은한 녹색 차밭을 눈에 한가득 담는다고 상상해 보자.

신선이 따로 없을 듯한 꿈의 풍경을 연출한 사진 속의 미세 물방울들은 안개(fog)일까 박무(Mist)일까? 사물을 식별할 수 있는 시정거리가 1km 이하이면 안개, 그 이상이면 박무라고 부른다. 안개가 박무보다 입자가 더 크고 시정거리가 짧다.

2등상 ‘괴물’. Weather Photographer of the Yea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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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구름이 도시를 삼켜 버릴 듯

2등상은 크로아티아의 휴양도시로 잘 알려진 이스트라반도 우마그를 구름이 뒤덮고 있는 풍경이다. `괴물'이라는 사진 제목처럼 도시 전체를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구름 모습에 압도된다. 자연이 만든 거대한 몸뚱아리 밑의 도시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아주 낮은 고도에서 넓게 수평으로 펼쳐진 쐐기 모양의 이 구름(shelf cloud)은 천둥, 번개를 동반한다. 구름이 지나가면서 돌풍이 불고 기온이 급강하한 뒤 비가 쏟아진다.

인기상 ‘바이칼의 보물’. Weather Photographer of the Yea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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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구조물이 호수에 내려앉았나

일반 시민들이 뽑은 인기상은 러시아 바이칼호 사진에 돌아갔다. `바이칼의 보물'이란 제목의 이 사진은 작가가 이 호수를 탐사하던 중 촬영한 것이다. 눈에 덮인 얼음 언덕이 곳곳에 솟아 있다. 바이칼호는 세계에서 가장 깊고 큰 담수호로 전 세계 담수량의 5분의 1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1년 중 약 5개월은 얼음으로 덮여 있다. 겨울에 기온 강하와 함께 호수 이곳저곳이 불규칙하게 얼어붙으면서 큰 얼음덩어리가 만들어진 뒤 이것이 바람에 깎이고, 녹고, 다시 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청록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기이한 풍경이 완성된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 속의 외계 구조물을 보는 듯하다.

수상자인 알렉세이 트로피모프는 “이때는 정오 무렵이어서 내가 주로 사진을 찍는 시간대가 아니었지만 햇빛이 얼음 덩어리에 굴절되면서 내 눈을 사로잡아버렸고, 결국 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젊은 사진가상 ‘얼어붙은 생명’. Weather Photographer of the Yea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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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잎사귀…갇혀 버린 공기방울

17세 이하 부문인 젊은 사진가상은 얼음 속에 갇혀 있는 녹색 잎 사진 `얼어붙은 생명'이 차지했다. 수상자인 러시아의 17살 청년 콜레스니크 스테파니 세르기브나는 “해가 쨍쨍한 여름날의 한 장면이었다”며 “이 잎사귀에겐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물 속의 공기도 얼음에 갇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채 공기방울을 형성했다. 빙결 속도가 빠를수록 공기방울 수와 크기가 커진다고 한다.

젊은 사진가상 2위 ‘서프 업’. Weather Photographer of the Yea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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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솟아 오른 서핑 파도?

젊은 사진가상 2위는 지난 6월 미국 미주리주 와일드우드의 라파예트고교 주차장에서 아이폰XS로 찍은 ‘서프 업’(Surf's Up)이다. 사진 제목처럼 바다의 서핑 파도를 그대로 복사해 하늘에 올려 붙인 듯하다.

수상자인 엠마 로즈 카스텐은 “학교 주차장에서 친구를 만나, 코로나19 때문에 각자 타고 온 자동차 안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이 커다랗고 멋진 구름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거대한 물 벽이라고 착각했다”며 이 구름이 나타난 직후 비가 내렸지만 많은 양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굳이 값비싼 카메라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이다.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여름철에 멕시코만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올라오면서 이런 기상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한 해 평균 40~50차례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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