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2일(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탄신 200주년 기념일

2020. 5. 12. 00:43■ 大韓民國/기념일 추모추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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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전쟁과 나이팅게일 *1854년, 프랑스와 영국의 연합군은 크림 반도에 이르러 러시아의 *요새인 세바스토폴을 에워쌌어요. 세바스토폴은 러시아의 군함이 머물러 있던 곳이에요. 이곳을 포위하여 빼앗으면 러시아는 두 번 다시 배를 타고 지중해로 나올...

과목별 학습백과 세계사 초등
  • 나이팅게일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Florence Nightingale)

    ‘광명의 천사’라고 불리던 영국의 간호사로 병원·의료제도의 개혁자이다. 간호사 직제를 확립하고 의료 보급의 집중적 관리와 오수 처리 등의 방법으로 의료 효율을 증진시켰다.

    똑소리나는 일반상식
  • 밤 꾀꼬리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Le Rossignol(The Nightingale))

    초기 대표작이다. 다른 작품에서 보기 힘든 특색을 가지고 있다. 〈꾀꼬리〉의 등장인물인 꾀꼬리의 나이팅게일의 이름을 따 “나이팅게일”이란 명칭으로도 불린다. | 4년의 공백 후 만든 안데르센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3막 서정 이야기 모스크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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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영국의 간호사, 작가, 통계학자이다. 통계자료와 그래프를 활용한 수학적 방식으로 영국정부를 설득하여 군병원의 여건을 크게 향상시켰다. 크림전쟁에서는 간호활동으로 큰 업적을 세웠다. | 나이팅게일의 생애 나이팅게일은 1820...

      수학교과서에 나온 인물 사전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Florence Nightingale)

      19세기 중후반에 활약했던 영국의 간호사. 전문교육을 통해 간호사를 여성의 전문직업으로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크림 전쟁에서 보여준 종군 간호사로서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간호활동으로 이후 간호사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군대보건, 간호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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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Florence Nightingale)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은 영국의 간호사로, 병원의 개혁에 힘쓴 박애주의자였다.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난 그녀는 영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다른 이를 돌보는 일에 열성을 보여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

      누구나 세계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 나무위키

    베이더 윌리엄 월레스 프랜시스 드레이크 존 웨슬리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아서 왕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 로버트 스콧 이넉 파월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클리프 리처드 알렉산더...

  • 건 아니다. 전문 심리학 용어가 아닌 대중적으로 쓰이며 퍼진 용어로 이름의 유래는 당연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단 나이팅게일 본인과는 간호라는 요소외엔 일체 관련도 없다.[1] 여담으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 등불을 든 천사'라고 불렸던 나이팅게일의 삶을 통해 희생과 봉사에 대해 생각해봐요. ​ ​ ​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영국 런던의 부유한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플로렌스가 살던 시대에는 플로렌스처럼 부유...

  • 서명 / 저자 : 나이팅게일의 간호론 : 참 간호와 그릇된 간호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지음; 김조자 ; 이명옥 [공]옮김. 원서명 : Note on nursing 형태사항 : 164 p. ; 23 cm ISBN : 2008258001365 : 참고 :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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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정회 칼럼] 소록도 ‘두 천사’와 노벨평화상


    • 허정회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27 16:29 


    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가을이 한참 농익어 가던 지난 주말, 난생 처음 소록도(小鹿島)에 발을 디뎠다. 소록도는 필자의 여행 버킷리스트에 있었지만 그간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았다. 마침 얼마 전 고흥에 둥지를 튼 친구 얼굴도 볼 겸 먼 길을 떠났다. 소록도는 남해안 고흥반도 끝에 있는 작은 섬이다. 녹동항과는 불과 600미터 떨어져 있다. 10여 년 전 소록대교 개통으로 지금은 육지 왕래가 아주 편해졌다. 소록도는 섬 모양이 작은 사슴을 닮아 붙여졌다는 설과 녹도(鹿島)로 불리던 녹동 건너편에 있는 작은 섬이라 해서 소록도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소록도는 조선시대에는 수군(水軍)이 진을 치고 있던 곳으로 임진왜란의 전장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나환자 격리 방침에 따라 한센인들을 이곳에 강제 수용했다. 해방 직후였던 1945년 8월 22일, 병원 자치권을 요구하던 한센인과 이를 거부하는 직원 간 갈등으로 84명의 한센인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록도는 예쁜 이름과 달리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록도 탐방안내소 초입에 수탄장(愁嘆場)이 있었다. 명칭대로 근심과 탄식의 장소다. 소록도 갱생원은 직원과 환자가 격리돼 있다. 수탄장은 한 달에 한 번 환자와 감염되지 않은  자녀가 도로 양옆에서 일정 거리를 둔 채 상면하는 곳이었다. 이 슬픈 광경을 묘사해 수탄장이라 불렀다. 혈육의 정을 눈으로만 나누고 한 달 후를 기약해야만 했다. 

      오른쪽으로 그림 같은 바다를 끼고 조성된 데크를 걷다보면 왼쪽에 소록도병원과 만난다. 이 병원의 전신은 소록도자혜의원이다. 일제강점 초기 부산, 대구, 광주 세 곳에 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던 한센병요양원이 있었으나 규모가 작아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없었다. 당시 환자 대부분은 다리 밑이나 움막에서 살거나 떠돌면서 걸식하고 있었다. 필자도 어렸을 때 길거리를 배회하며 구걸하는 이들과 마주친 기억이 선명하다. 조선총독부는 이들을 격리 수용할 방침을 세우고 전국을 답사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식수가 풍부하고, 육지와 가까운 섬을 물색한 결과 소록도가 적지로 선정됐다. 이 병원에는 아직 489명의 한센병 환우가 치료 받으며 요양 중이다.

      병원에서 중앙공원으로 향하는 왼쪽에 검시실(檢屍室)이 있다. 해부실이라고도 불리는 이 건물은 1935년 건축된 시멘트 벽돌조로 두 칸으로 나뉘어 있다. 입구 넓은 방은 사망 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사용됐고, 안쪽 방은 검시 전 사망환자의 유해를 보관하던 영안실로 쓰였다. 모든 사망 환자는 이곳에서 시신 해부절차를 마친 뒤 간단한 장례식을 거쳐 섬 내 화장장에서 화장 후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한센인은 태어나 세 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 첫 번째는 한센병 발병, 두 번째는 사망 후 시체 해부, 세 번째는 장례 후 화장이 그것이다.

      인근에 감금실이 있다. 검시실과 같은 해, 같은 건축자재로 지어진 것으로 육중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만 다르다. 감금실은 일제강점기 인권탄압의 상징이다. 모든 한센병 환우는 직업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이동의 자유가 없었다. 원장 직권으로 강제 감금, 감식(減食), 금식, 체벌을 받았고, 강제노역을 해야만 했다. 지금은 종려나무, 편백, 차나무 등 500여 수종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중앙공원도 이들의 피와 땀, 눈물의 산물이다.

      소록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다. 우리나라가 가난에 허덕이던 1960년대 초 입국해 40여 년 간 한센인을 보살피며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실천했다. 2005년 11월 건강 악화로 자신들이 도움은커녕 폐를 끼치게 될 것 같아 홀연히 섬을 떠났다. 최근 범국민노벨평화상추천위원회(위원장 김황식)가 추진한 이들에 대한 노벨평화상 추천 서명이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마침 내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간호사의 해이자 나이팅게일 탄신 200주년이다. 이들 ‘두 천사’의 업적이 노벨평화상으로 연결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허정회 칼럼니스트  bodo@nd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