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는지도 몰랐다"…국군대구병원 진료·간호과장의 53일

2020. 4. 12. 13:25■ 건강 의학/COVID-19 Omicron외

"봄이 왔는지도 몰랐다"…국군대구병원 진료·간호과장의 53일

송고시간2020-04-12 12:27


2월 중순 이후 아직 가족 못 봐…영상통화·카톡으로 가끔 대화

"환자 쏟아지던 일주일은 전쟁터…첫 완치 뒤 할 수 있다 생각"

병원 내 공간 분리해 의료진 피로도 줄여…달려와 준 신임 간호장교 큰 힘

국군대구병원의 진료·간호과장
국군대구병원의 진료·간호과장

김광동 진료과장(오른쪽)과 안효정 간호과장(왼쪽)이 국군대구병원 내 간호스테이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촬영 손형주 기자]

(대구=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벌써 53일이 지났네요. 병원 밖에 봄이 왔는지도 몰랐습니다."

국군대구병원 김광동 진료과장(중령)과 안효정 간호과장(소령)은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53일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투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또 안도의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2월 23일 국가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국군대구병원을 이끌어 온 군 의료진 두 명에게 지난 53일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빈 병실 바라볼 때 보람
빈 병실 바라볼 때 보람

빈 병실 점검하는 김광동 진료과장(왼쪽)과 안효정 간호과장. [촬영 손형주 기자]

◇ 첫 환자 입원 전 만반의 준비…일주일은 불안의 연속

 

"간호 인력 30명에 98병상이던 병원을 6일 만에 121개 음압기를 갖춘 303병상의 국가 감염병전담병원으로 바꾸려고 하니 처음에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김 과장과 안 과장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군 병원을 국가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전환하고 첫 환자를 받은 일주일로 꼽았다.

안 과장은 "환자와 의료진 동선을 고려한 시설 준비로 밤을 꼬박 새웠다"며 "첫 환자를 받는 날에는 음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계속 확인하는 등 새벽까지 준비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준비단계에서 장기전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다른 코로나19 전담병원은 건물 안에 들어갈 때 반드시 레벨D 보호복을 입지만, 국군대구병원은 방호복 입는 공간과 마스크만 써도 되는 공간으로 분리했다"고 설명했다.

분리된 병원 내 공간.
분리된 병원 내 공간.

왼쪽은 환자와 레벨D 방호복을 입어야 출입할 수 있는 공간. 오른쪽은 방호복 없이 이동할 수 있다.

공간을 분리하느라 힘들었지만, 의료진이 단 한명도 감염되지 않고 피로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김 과장은 설명했다.

김 과장은 "완벽하게 준비하려 했지만 시행착오가 많았다"며 "첫 환자 입원 후 일주일간 하루에 50명씩 환자가 들어왔는데 하루 8시간 동안 방호복을 벗지 못한 의료진이 있었을 정도였다"며 "그 이후 조금씩 시스템을 보완해 훨씬 수월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첫 퇴원자가 나왔던 날과 한걸음에 달려와 준 신임 간호장교들이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순간을 꼽았다.

김 과장은 "준비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잘 치료할 수 있을까 불안했다"며 "첫 환자 나가는 거 보고 이거 우리 시스템이 됐구나 확신했다"고 말했다.

안 과장은 "신임 간호장교 75명이 임관 후 곧바로 국군대구병원으로 달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실무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과 걱정이 많았다"며 "교육 후 능숙하게 보호의를 입고 입원환자 간호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배로서 보람됐고 이들이 임무를 마치고 모두 음성이 나왔을 때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 환자와 간호장교 모두 울었던 날…뜨거운 차 한잔에 '행복'

코로나19 환자들이 국군대구병원 의료진에 보낸 감사 문자와 편지.
코로나19 환자들이 국군대구병원 의료진에 보낸 감사 문자와 편지.

격리병실에서 손편지는 외부로 가져올 수 없어 의료진이 투명 벽에 대고 사진을 찍어 보관하고 있다. [국군대구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과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로 코로나19로 남편이 숨진 날 확진 판정을 받아 입원한 아내를 떠올렸다.

그는 "의연하던 아내가 군종 목사와 상담 뒤 눈물을 보였고, 그 이후 정신적인 문제 때문인지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며 "이후 상급병원으로 옮겨진 뒤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도했다"고 말했다.

안 과장은 "한 달이 지났지만 계속 양성이 나와 퇴원을 못 한 여성 환자가 있었다"며 "장기간 격리생활로 힘들어했는데 남편이 전화로 '차라리 제가 대신 걸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간호장교와 환자가 모두 울었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장교가 종이컵과 몇 가지 차를 준비해 넣어드렸는데 잠시 뒤 환자가 오늘이 입원 중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문자를 보내서 또 한 번 간호 장교들이 울었다"고 말했다.

두 과장 모두 2월 중순부터 가족을 거의 보지 못했다.

국군수도병원에서 2월 중순 파견 온 김 중령은 11살·9살의 두 아이를 둔 아빠다.

김 과장은 "갑자기 파견 소식을 듣고 가족과 인사도 못 하고 차에 있는 옷가지만 몇 개 챙겨 이곳에 온 뒤 아직 한 번도 가족들을 보지 못했다"며 "영상통화와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묻고 있다"고 말했다.

8살·7살·5살의 세 아이 엄마인 안 소령은 "첫 주는 가족이 전화가 와도 받을 수 없었다"며 "남편도 다른 지방에 있어 할머니 밑에서 크고 있는 아이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고 고맙다"고 전했다.

국민들에게 보내는 감사
국민들에게 보내는 감사

김 과장과 안 과장이 격리 병동 투명 벽에 '여러분 힘내세요'를 적고 있다. 이 투명 격리병동과 일반병동 간 의료진이 소통하는 주요 창구였다.

안 소령은 "두 달 가까이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많이 지쳐 계신 국민들이 국군대구병원 의료진에게 많은 지원과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국군 의료지원단 모두 건강하게 환자치료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handbroth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