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에 '유산기부' 메모 남긴 40대 외동딸 유지 받든 80대父

2019. 12. 19. 04:52■ 인생/사람이 사는 세상

연합뉴스

휴대전화에 '유산기부' 메모 남긴 40대 외동딸 유지 받든 80대父

입력 2019.12.18. 17:16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4억4천만원 기부

(수원=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경기 수원에 살던 40대 여성이 휴대폰 메모장에 "어린이재단에 유산을 기부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지자 유일한 유족인 아버지가 딸의 뜻을 받들어 딸이 남긴 거의 전 재산을 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

어린이재단에 4억4천만원 기부한 고 강성윤씨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8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에 따르면 재단은 최근 수원에 사는 강준원(84) 씨로부터 4억4천만원을 기부받았다.

이 돈은 준원 씨의 외동딸인 성윤(43) 씨가 사망하면서 남긴 유산이다.

수원시 매탄1동에 살던 성윤 씨는 지난 9월 병원에 입원했다가 패혈성 쇼크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성윤 씨의 장례는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 준원 씨가 치러야 했지만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강 씨는 장례를 치를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이때 수원시 매탄1동 행정복지센터가 나서서 성윤 씨의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성윤 씨가 지병을 앓고 있을 때 매탄1동 행정복지센터의 지현주 통합사례관리사가 성윤 씨를 만나 여러 차례 도움을 준 것이 인연이 됐다.

지현주 통합사례관리사는 미혼인 성윤 씨가 사망하기 전 4개월 동안 1주일에 서너번씩 성윤 씨의 집을 찾아가 상담하고 보살펴줘 누구보다 성윤 씨와 가까웠다고 한다.

지현주 관리사에 따르면 성윤 씨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삼성반도체에 취직해 거의 2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3년 전 몸이 아파 그만 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고등학생때부터 가장 역할을 맡게 된 성윤 씨는 아버지마저 노인성 질환으로 6년 전 요양병원에 입원하자 몸이 성치않은 와중에도 아버지를 살뜰하게 챙겼다고 한다.

지 관리사는 "성윤 씨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서인지 소외아동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자신이 죽으면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겠다는 유서를 써야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갑작스럽게 사망한 성윤 씨의 유품을 정리하던 지 관리사는 성윤 씨 휴대전화에서 "어린이 재단에 유산을 기부해달라"는 메모를 발견했다고 한다.

사진갤러리, 카카오톡은 모두 잠금이 되어 있어 볼 수 없었지만, 유서가 담긴 휴대전화 메모장은 누구나 볼 수 있게 잠금설정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

성윤 씨의 유서 메모를 확인한 지 관리사는 아버지 준원 씨에게 딸의 유지를 전했고, 아버지도 딸의 뜻에 따라 사망보험금, 증권, 예금 등 4억4천만원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하는 데 동의했다.

딸 성윤 씨는 일부 유산을 요양병원에 홀로 남아 생활해야 하는 아버지를 위해 남겨뒀다.

어린이재단에 4억4천만원 기부한 고 강성윤씨 유족에 감사패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이날 매탄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성윤 씨의 아버지 준원 씨와 지현주 통합사례관리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재단은 성윤 씨가 기부한 유산을 고인의 거주지였던 매탄동의 소외된 아동들에게 일부 지원하고, 나머지는 국내 아동의 주거비·의료비·자립지원금 등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이제훈 회장은 "고인의 뜻에 따라 유산기부에 동의하신 아버님과 고인의 뜻이 실현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주신 매탄1동 행정복지센터에 감사드린다"면서 "소중한 후원금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 소중하게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hedgeho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