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부럽지 않은 해파랑길, 한번 보시죠

2019. 11. 29. 21:09■ 여행/국내 여행지 소개

오마이뉴스

산티아고 부럽지 않은 해파랑길, 한번 보시죠

이현숙 입력 2019.11.29. 11:54

파도소리 들으며 바닷바람 벗삼아 걷고 걷고 또 걷고

[오마이뉴스 이현숙 기자]

▲  끝없이 이어지는 바닷길과 들길이 더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 이현숙
 
가히 걷기 열풍이다. 주로 좁다란 산길이나 오솔길을 따라 만들어진 길을 걷다가 점차 길이 늘어난다. 이제는 일부러 시간 내어 걷기를 도모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올레길, 둘레길이 생겨나고 그러다가 더러는 걷기가 놀이가 되기도 하고 축제가 되기도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특별한 장비나 시설이 필요하지도 않아서 누구라도 동참할 수 있는 것이 걷기다.  
 
▲  바닷길을 따라 해파랑길 끝까지 길 안내를 해주는 표시가 친절하다
ⓒ 이현숙
 
이제는 파도를 벗삼아 바다를 즐기며 걸을 수 있는 해파랑 길이 생겨났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동해안 일대에 조성한 해안 걷기 길이다. 부산광역시 오륙도에서 출발해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해안도로 등 총 770㎞를 잇는 국내 최장거리 탐방로다.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함께 한다'는 의미의 국어 조사 '랑'이 합쳐진 것이라고 한다.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이다.
 
▲  바위길이 만만치 않지만 파도소리와 함께 걷는 맛에 비할바가 아니다.
ⓒ 이현숙
  
영덕 블루로드 B코스, 경북 영덕의 미항 축산항에서 해파랑 21-22코스 트레킹은 시작되었다. 길 양 옆으로 대나무가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길을 따라 죽도산으로 올랐다. 시작부터 숨차다. 바로 이어서 죽도산 전망대가 나타났고 7층 꼭대기에 올라서 축산항의 어촌마을을 내려다보며 땀을 식혔다.
다시 데크길을 따라 블루로드 구간으로 들어섰다. 영덕 블루로드 양쪽으로 야생초 군락이 있어서 산길을 내려가며 자연의 정원을 지나는 느낌이다. 출렁대는 블루로드 다리인 영산교를 건너면서 물새 떼들의 평화로운 모습에 마음 다잡고 다시 걷는다.
 
▲  길가의 해국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피어있다.
ⓒ 이현숙
바닷가를 지나 이어지는 산길이 좁고 간단치 않다. 원래의 지형대로 울퉁불퉁한 절벽 같은 바위틈을 밧줄을 잡고 지나고 철계단을 오른다. 숨차서 헉헉거리고 땀이 줄줄 흐른다. 벌써부터 지치면 안 되기에 페이스 조절에 신경쓴다. 해파랑길 저편으로 바다는 잔잔히 파도소리를 내고 발걸음 옆으로 해국이 무리 지어 피어 있다. 간간히 힘이 되어주는 바닷길의 활력소다. 
길을 안내하며 바람에 날리는 해파랑길 리본 따라 바다를 끼고 걷다 보면 경정 마을 해변이 나온다. 갈매기 떼가 반기듯 무리 지어 날아준다. 어촌 마을 횟집의 '방탄소년단이 다녀간 영덕 맛집'이란 현수막이 잠깐 기분을 풀어준다. 잠시 쉬며 500ml 물 한 병을 벌컥벌컥 단숨에 마시고 다시 걷기 시작.
 
▲  걷다가 걷다가 얻는 즐거움~
ⓒ 이현숙
 
후포항으로 옮겨 본격적인 해파랑 24코스다.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니 피톤치드 향이 느껴진다. 생태습지공원인 평해사구습지도 있다. 자연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관동팔경 중의 하나인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월송정 정자까지 한참 걸린다. 정자에 올라 월송 해변을 내려다보며 또 한 번의 쉼을 갖는다. 간간히 쉴 수 있도록 자연은 자리를 만들어 놓고 기다려 준다. 
아무도 없는 길에 드리워진 나무와 억새와 잡초의 그림자를 밟으며 다시 걷는다. 태초의 길이 이랬을까. 울창한 솔숲 길은 떨어진 솔잎이 쿠션이 되어 푹신하다. 고요한 소나무 숲으로 소리 없이 쏟아지는 빛이 오후를 훌쩍 넘겼음을 알려준다. 
 
▲  고요한 겨울바닷길을 걸어보는 행복을 맛보다..
ⓒ 이현숙
 
다리를 건너고 바닷가 모래밭을 지난다. 저녁 무렵의 해안길이 환상적이다. TV 프로그램 '캠핑 클럽'에서 핑클의 이효리 일행이 지냈던 구산 해변이다. 송림을 등지고 노란 등대가 선명하다. 해안의 운치가 연인들을 불러들였나. 바닷가 모래톱에 연인 몇 커플이 목하 데이트 중이다. 이곳에 오토캠핑장이 있다. 해송 사이로 텐트, 카라반 캠핑카, 글램핑 등 그 외 편의시설이 제법 갖추어진 규모다.
날은 점점 점점 어두워지고 하루 종일 내내 걸었던 길은 내 뒤에서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쉬지 않고 끝없이 걸었던 바닷길의 하루다. 왕피천의 은어 다리를 지나고 숙소에 드니 온몸의 욱신거리는 피곤함이 뿌듯하다. 덕구 온천탕에 갈 생각이었지만 그냥 푹 쉬기로 했다. 아니 뻗었다.
            
▲  물가자미 음식점 앞의 영덕 축산항엔 고깃배들이 출어를 준비중이다.
ⓒ 이현숙
▲  축산항 주변에 물가자미로 가득 차린 밥상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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