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8. 19:32ㆍ■ 大韓民國/문화재 사랑
1500년만에 열린 가야 권력자 무덤 속은 빨강 빛으로 덮여있었다
노형석 입력 2019.11.28. 14:36 수정 2019.11.28. 17:16
돌 올리자 토기와 흙으로 채워진 무덤방
무덤 돌벽은 진흙 바르고 빨간 주칠 흔적 인상적
주칠 흔적은 귀신 쫓는 벽사 의미로 추정
5세기 가야소국인 비화가야 권력자의 큰 무덤이 1500년만에 처음 열렸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8일 오전 11시께 경남 창녕읍 교리 산 5번지 교동기야고분군에서 최근 도굴되지 않은채 발견된 대형무덤인 63호분의 덮개돌(개석)을 들어내고 길이 6m가 넘는 묘실 내부를 취재진과 학계 전문가들에게 내보였다.
무게 2.8톤, 3.8톤의 개석 2개를 기중기가 걷어올리면서 드러난 묘실 안은 목긴항아리(장경호)와 뚜껑 달린 굽다리접시(장경호) 등 특유의 창녕식 토기들이 벽에서 흘러내린 흙과 섞인 채 바닥 공간을 가득 채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토기들 사이로는 신분 높은 무덤주인의 상징물로 묻는 농기구 일종인 살포와 철화살촉, 말갖춤 등으로 추정되는 금속제 유물의 조각들도 점점이 눈에 들어왔다. 덮개돌 안쪽으로는 토기가 없는 여백 공간도 보였는데, 순장자가 몯힌 구역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또다른 관심거리인 무덤주인 인골이 남았을지에 대해서는 겹겹이 쌓인 토기들과 흙층을 수습하고 물체질해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작고 각진 돌들을 쌓아 만든 묘실 사방벽도 한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도 진흙을 전면에 펴바른 뒤 빨간 주칠을 한 흔적이 곳곳에 뚜렷하게 남아 있어 취재진과 전문가들의 눈길을 끌었다. 개석을 들어내기 전 내시경을 넣어 사전 조사하는 작업에서도 확인된 주칠 흔적은 63호분 발굴 작업에서 가장 도드라진 특징으로 꼽히는 성과다. 다른 어느 고분보다도 주칠 범위가 넓고 흔적도 뚜렷하다고 한다. 연구소 쪽은 고대인들이 삿된 귀신을 망자한테서 내쫓는 벽사의 의미로 무덤벽 사방에 빨간 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하면서 무덤방 벽에 숱하게 주칠한 흔적이 발견되는 고대 일본 열도의 고분 축조 양식과도 일정한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발굴현장 아래 임시 진열대에는 63호분 인근의 62호분에서 출토된 등잔형 상형토기가 단연 주목 대상이었다. 전화 수화기 혹은 천칭 모양의 몸체에 2개의 등잔 모양을 균형감 있게 얹은 이 상형 토기는 여태껏 본 적이 없는 비화가야 장인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뽐냈다. 박종익 연구소장은 “대형가야고분이 전혀 도굴되지 않고 매장 당시의 상황을 유지한채 발견된 것은 거의 전례가 없다. 비화가야의 장묘의례와 생활사를 복원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묘실 바닥에 두껍게 겹을 이루어 쌓인 토기들과 흙층을 걷어내면 인골과 금관, 귀고리, 말갖춤 같은 중요유물들이 다수 출현할 가능성도 상당하다는게 연구소 쪽의 전망이다. 양숙자 학예실장은 두어달 정도로 예상되는 묘실 수습작업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녕/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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