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5. 08:00ㆍ■ 大韓民國/대통령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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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 '탕 탕 탕!'… 삼엄한 경비 뚫고 유유히 입장한 암살범
최진원 기자2024. 8. 15. 07:16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행사에 박정희 대통령과 육 여사가 참석했다. 이날 행사장엔 대통령 내외와 함께 거대한 계략을 가진 한 남성도 참석했다. 남성은 재일교포 문세광이었다. 그는 허리춤에 권총을 챙겨둔 채 행사장에 들어섰다.
행사가 시작됐고 박 대통령은 단상에 올라 광복 축사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가 "나는 오늘 이 뜻깊은 자리를 빌어서 조국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는 부분까지 말하자 식장 뒤편에서 쾅 소리가 났다.
문세광이 권총을 꺼내다 실수로 자신의 허벅지에 총을 쏜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축사를 이어 나갔다. 당황한 문세광은 급하게 단상으로 향했고 두 번째 총알을 발사했다. 총알은 단상에 맞았고 문세광은 이내 자세를 잡고 세발의 총을 더 발사했다.
이 총알은 박 대통령이 아닌 육 여사를 향했다. 총을 맞은 육영수 여사는 급히 서울대학교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향년 4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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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을 결심한 문세광은 일본의 한 경찰서에서 권총을 훔쳤다. 그는 1974년 8월6일 요시이 유키오라는 이름으로 위장해 입국했고 8월15일 광복절 행사에 일본인 초청자로 위장해 참석했다. 문세광은 멀끔한 차림으로 일본어를 사용하며 경호원들에게 말을 걸었다. 당시 입구를 지키던 경호원들은 문세광을 일본인 초청자로 생각했고 별다른 제재 없이 행사장에 입장시켰다.
문세광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간부 김효룡에게 포섭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번 범행이 자신의 단독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조사 당국은 "북괴의 지령을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한 암살 시도 사건"이라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내란목적살인 등 총 6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그해 10월19일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사형을 선고받자 항소했지만 서울고법과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사형이 확정된 12월17일로부터 3일 뒤인 12월20일 서울구치소에서 형이 집행됐다. 생을 마감했을 당시 문세광의 나이는 2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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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8월 월간 '다리'와의 인터뷰에 참여한 이건우 경감이 육 여사를 죽인 것은 문세광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 당시 수사에 참여한 인물이다. 이 경감은 문세광을 수사한 수사당국의 발표와 실제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수사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문세광이 쏜 첫 번째 총알은 문세광의 허벅지, 두 번째 총알은 단상에 맞았다. 이어 다시 자세를 잡고 쏜 세 번째 총알은 불발됐고 네 번째 총알이 육 여사를 맞혔다. 다섯 번째 총알은 행사장에서 넘어지면서 천장을 맞췄다고 전했다.
문세광이 사용한 권총은 총 5발을 장착할 수 있는 리볼버였고 회수 당시 불발된 한발의 총알이 남아 있었다. 당국의 발표처럼 총 네발의 총알이 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 경감은 문세광이 쏜 세 번째 총알은 행사장 내 태극기를 맞혔고 네 번째 총알은 천장에 맞았으며 다섯 번째 총알이 불발됐다고 주장했다.
문세광을 향해 응사한 경호원의 총에 육 여사가 맞았다는 의혹도 있다. 현장에서 발견된 총알은 모두 7발이었는데 4발은 문세광이, 3발은 경호원이 쏜 것이다. 이 중 1발은 행사장에 있던 장봉화양에게 향해 장양이 사망했고 나머지 2발 중 하나가 육 여사를 맞혔다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제3의 인물'에 의한 저격 등의 의혹이 제기됐으나 명확하게 증명된 사실은 없다.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문세광은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반한 운동을 벌인 전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중앙정보부(이하 중정)도 이를 알고 있었고 주시하는 위험인물이었는데 너무나 쉽게 한국에 입국한 것이 의문이다.
또 행사장에 입장한 문세광은 사건 당일 행사장에 입장할 때 초청자의 가슴에 달아주는 비표도 없었다. 그날 행사장에는 금속탐지기가 설치됐는데 권총을 찬 그가 어떻게 입장했는지도 의문이다.
이 사건으로 국내 반일 감정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우리 국민은 분개했고 '제2의 을미사변'으로 불리며 양국의 외교 관계가 급변했다.
2005년 공개된 문세광 사건 관련 외교 문서에 따르면 당시 한일 관계는 수교 단절 직전까지 치달았다. 당시 일본은 김대중 납치사건에 중정이 가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일본 주권을 침해한 사건이라며 한국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육 여사가 일본인 문세광의 손에 사망하자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일본은 급하게 특사를 파견했고 사건 해결에 나섰다.
영부인이 암살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수많은 의혹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 부인을 잃은 박 대통령은 1979년 중정 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에 사망했다.
최진원 기자 chjo063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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