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경험 하면 무조건 죽는다”···괴이한 ‘교미’하는 이 동물의 신비

2024. 5. 26. 08:35■ 자연 환경/동물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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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경험 하면 무조건 죽는다”···괴이한 ‘교미’하는 이 동물의 신비 [생색(生色)]

[생색- 28] 모든 아름다움에는 각고의 인내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꽃도 누군가의 노고없이는그 향기를 뽐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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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경험 하면 무조건 죽는다”···괴이한 ‘교미’하는 이 동물의 신비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2024. 5. 26. 06:45

 

[생색- 28] 모든 아름다움에는 각고의 인내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꽃도 누군가의 노고없이는그 향기를 뽐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꿀벌과 같은 매개자들이 끊임없이 꽃가루를 날랐기 때문입니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돌문화공원을 찾은 입장객이 데이지 꽃밭을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름다운 꽃을 보는 일도, 맛있는 과일을 먹는 일도 그들 없이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 농무부(USDA)는 농산물에 꿀벌이 이바지하는 경제적 가치를 미국 내에서만 연간 약 20조원으로 추산합니다. 미물이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닌 셈이지요.

벌들의 사생활은 그들이 지구에 기여하는 것만큼이나 경이롭습니다. 번식의 과정이 철저히 분업화돼 있어서입니다. 그들의 침실을 살짝 들어가 봅니다. 지난 5월 20일이 세계 꿀벌의 날이었습니다.

“냠냠냠. ” 꽃에서 꿀을 빨아먹는 꿀벌. [사진출처=Alvesgasper]
탱자탱자 노는 여왕벌과 수벌?
여기 벌통이 하나 있습니다. 벌통 하나에는 약 8만 마리의 벌이 함께 살아갑니다. 이들은 아시다시피 철저한 계급사회. 여왕벌 1마리와 그 밑의 수벌 2000마리, 그리고 나머지 암벌 8만마리가 철저히 분업화된 삶을 살아가지요.
일벌들이 만든 벌집. [사진출처=merdal]
어쩐지 철저한 차별도 느껴집니다. 여왕벌을 비롯한 수벌들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8만 마리의 암벌만이 집을 만들고, 청소하고, 경비를 서면서, 먹이를 수집합니다. 남자들과 여왕벌이 탱자탱자 노는 동안에요.
“나는 언제쯤 짝 한번 만나 보나.” 호박벌의 모습. [사진출처=위키피디아]
계급차별은 ‘침실’에서는 극에 달합니다. 교미의 즐거움은 오직 수벌과 여왕벌만 누릴 수 있습니다. 암벌들은 그 평생 일만하고도 남자 손 한번 잡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들은 날때부터 생식능력이 없는 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암벌의 삶이란 그야말로 비참하기 짝이 없지요.
외간 ‘수벌’들과 교미하는 여왕벌
일벌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여왕벌은 교미에 열중합니다. 이들의 교미는 독특하기 그지 없는데, 자기의 집에 있는 숫놈들과는 몸을 섞지 않아서입니다. 혹시나 모를 근친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왕벌은 ‘교미비행’이라는 과정을 통해 ‘드론 집합지’(drone congregation area)라는 곳으로 떠납니다.

다른 벌통에서 온 수벌들이 가득한 곳이지요. 우리말로 이를테면 ‘헌팅포차’와 같다고 해야 할까요. 이 곳에 모인 많은 수벌에게 여왕벌은 몸을 허락합니다.

다양한 유전자를 저장해 새끼들을 낳는 것이지요.

“일벌들아, 나 여왕벌을 숭배하라.”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여왕벌이 편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그녀(?)의 삶도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5년의 삶 동안 평생 벌집을 만들 새끼들을 낳아야하기 때문입니다. 평균 2~5년 동안 여왕벌이 낳는 알은 수백만개에 달합니다. 하루에 낳는 양만 해도 1500개가 넘습니다.

평민 암벌이 평생 일만 해야 하는 처지라면, 여왕벌은 평생동안 새끼만 낳아야 하는 운명입니다. 기구하기로 치자면 막상막하, 난형난제인 셈이지요.

“그래, 여왕도 나름 힘이 들겠지.” [사진출처=매튜T 레이더]
교미 성공=죽음···끔찍한 수벌의 운명
그럼 최종승자는 일 안 하고 애도 안 낳는 수벌일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수벌 역시 무서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어서입니다.

수벌 녀석들 역시 드론 집합지로 이동해 다른 벌집에서 온 여왕벌과 교미를 준비합니다. 평생을 기다리던 교미의 순간. 수벌이 여왕벌과 몸을 섞자 수벌은 복부가 파열돼 죽습니다. 생식기가 뽑혀 여왕벌 몸에 들어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벌들은 다소 기괴한 생식 구조를 지녔다. [사진출처=무하마드 마흐디 카림]
이 역시 다른 녀석과 교미를 막으려는 수컷의 전략인데, 수벌들은 여왕벌을 너무 쉽게 봤습니다. 집에 돌아온 여왕벌에게는 수 만마리의 일벌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일벌들은 여왕벌 몸에 박힌 생식기를 손쉽게 신속하게 제거해줍니다. 여왕벌이 언제든 다시 교미를 할 수 있도록.

여왕벌의 신체는 신비하기 그지없습니다. 교미를 통해 낳은 알들은 전부 암컷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수컷은 어떻게 태어나냐고요. 교미없이, 처녀생식으로 태어납니다. 여왕벌은 교미를 통해 다양한 유전자의 암컷을, 교미없이 자신과 유사한 수컷을 낳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수벌들에게 쾌락은 죽음과 같다네.” [사진출처=Tony Wills]
수 만마리에 달하는 암벌(일벌)들을 유전적 다양하게 만들어 외부적 위험요인으로부터 적응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합니다. 수컷들은 어차피 벌집을 떠나 다른 여왕벌들과 교미를 할 운명이기에 유전적 다양성의 필요성이 그만큼 크지 않다는 해석이지요.
여왕벌은 어떻게 선정되나
자 이제 교미를 통해 낳은 수천 마리의 알이 벌집에 놓여 있습니다. 여왕벌의 수명도 이제 다 되어가는 찰나. 차기 대권 주자인 후계자를 찾을 시간입니다. 일벌들이 특유의 눈썰미로 건강해 보이는 알 몇 개를 선별합니다. 이들은 이제 여왕벌 후보입니다.

선택된 알 혹은 유충들에게는 특별식이 제공됩니다. ‘로열젤리’입니다. 일벌들이 생산한 로열젤리를 먹은 유충들은 다른 새끼들보다 월등한 크기로 자라납니다. 이 후보자들에게는 일반적인 육각형 벌방과는 다른 세로로 길게 늘어난 특별공간(Queen cell)이 제공됩니다.

“우리가 바로 차기 대권 아니 여왕권 주자라네.” 로열젤리에 파묻힌 여왕벌 유충. [사진출처=Waugusberg]
“우린 일벌로 평생을 살아갈 처지라지.” 일벌 유충. 위 여왕벌 후보들의 주거 환경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사진출처=Waugusberg]
여왕벌 후보들이 특별한 교육을 받고 성충이 됐습니다. 태양은 두 개일 수 없는 법. 이들은 이제 하나만 남을 때까지 싸웁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마리만 남았을 때, 벌집의 최고 우두머리로 자리할 수 있게 되지요.

만약 기존 집권자가 다시 건강을 되찾는다면 어떻게 되냐고요. 새로운 여왕벌이 벌집을 떠나 새로운 벌집을 만들어 나갑니다. 벌이 개체를 늘려가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우리 덕분에 당신 인간들도 먹고사는 것이라오.” [사진출처=무하마드 마흐디 카림]
일벌들이 꽃과 꽃을 옮겨 다닌 덕분에 농작물의 씨앗 생산이 더욱 빨라질 수 있었습니다. 사과, 블루베리, 딸기, 토마토, 오이 등 다양한 농작물이 벌의 도움으로 자라납니다. 우리 식탁의 풍성함에는 벌이라는 조력자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벌의 위기 그건 우리 식탁의 위기다
지구를 알록달록하게 만드는 벌들이 이제 위기에 처했습니다. 각 대륙마다 벌의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어서입니다. 유럽에서는 50%가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입니다. 무분별한 농약사용과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생긴 일입니다.
미물의 작은 움직임이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든다. 자연의 세계란 공존을 톱니삼아 돌아가는 것이다.
벌들이 사라지면, 슬퍼할 이는 곰돌이 푸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빈곤해진 식탁을 보면서, 그때 우리가 벌을 지키지 못한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더 맛있는 음식과, 더 아름다운 꽃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벌을 지켜내야 합니다. 벌이 없어진 지구가 우리 인류를 벌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1926년판 곰돌이 푸.
<세줄요약>

ㅇ벌은 꽃과 농작물의 번식에 주요한 매개체다.

ㅇ계급사회로 살아가는 벌은 여왕벌만 번식을 독점하는 특이한 구조를 지니기도 했다.

ㅇ기후변화로 벌들이 점점 사라지면. 인류도 벌을 받게 될지 모른다.

<참고문헌>

ㅇ소어핸슨, 벌의 사생활, 에이도스,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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