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뭐야” 날 당황시킨 집…정리한 유품은 신발 하나였다카드 발행 일시2024.05.14

2024. 5. 22. 12:05■ 인생/자살 공화국

“여기 뭐야” 날 당황시킨 집…정리한 유품은 신발 하나였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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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보드랍던 날이었다.
골목골목 돌고돌아 겨우 찾은 주소.
가난한 마을에도 봄은 찾아온다고 바라던 참이었다.

하지만 주차하면서 창문을 열자마자 그곳의 봄바람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그집 앞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엔 이질적인 냄새가 스며 있었다.
물론 내게는 익숙한 그 냄새.

사후 2주는 지났을 거라 바로 짐작이 간다.
날이 따뜻해진 만큼 구더기와 파리도 그득할 것이다.

외부로 나 있는 현관문엔 경찰의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덜렁대며 간신히 붙어 있었다.
폴리스라인이 봄바람에 날려 휘적대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뜯어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족이 없어 무연고 처리된 60대의 죽음.
의뢰인은 집주인이었다.

“뭐야, 왜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

집 안에 있는 물건이라곤 낮은 수납장 하나와 작은 냉장고가 전부였다.
TV도 없었다.
싱크대 수납장도 텅텅 비어 있었다. 냄비 하나 없었다.

보통 유품정리 의뢰인들은 혼자 살아서 짐이 별로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막상 가 보면 혼자 살았어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살림들이 꽤 된다.
침대,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옷장들과 자잘한 물건들.
별거 아니라는 그럼 짐들을 추려 차에 싣고 나면 아무리 적어도 한 차 가득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현장은 집주인 말이 맞았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 집에 기본 옵션으로 달린 싱크대와 가스레인지를 제외하면
고인의 물건은 수납장과 작은 냉장고가 전부였다.

“왜 물건이나 옷들도 전혀 없지?”
이런 현장은 정말 처음이라 좀 혼란스러웠다.
멀리서 사는 집주인이 상황을 묻느라 전화를 걸어왔다.

“말씀하신 대로 짐이 전혀 없더라고요.”
“저는 무서워서 방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어요. 위층에 사시는 분이 자꾸 냄새가 난다고 해서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분이 경찰과 같이 방에 들어가 본 모양인데, 집 안이 텅텅 비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마무리 소독작업을 할 때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TV나 뭐든 놓였어야 할 낮은 수납장 위엔 엉뚱하게 밥통이 놓여 있었다.
전기밥솥에 넣는 ‘내솥’ 말이다.
종이박스를 여러 장 겹쳐 깔고 그 위에는 겹겹이 두껍게 호일을 덮었다.
내솥 안엔 하얗게 타버리고 남은 재가 그의 마지막을 말해줬다.

마지막 선택에 앞서 고인은 자신의 짐을 직접 정리해 처리한 것 같았다.
옷장이 아니더라도 옷걸이도 없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물건들조차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화장실 안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고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고 가족도 없으니 정보가 없었다.
유품조차 없으니 고인의 생전을 유추할 만한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그저 60대 남성이라는 것.
건축 노동자라는 것 정도.

아무리 짐이 적다고 해도 살면서 쓰던 물건들이 있었을 텐데.
그걸 들고 나가 폐기처분했으면 누구 눈에라도 띌 법도 했을 텐데.
이웃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빼곡하게 주택들이 밀집된 동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골목길만 빼고 다닥다닥 수많은 이가 벽을 접한 동네에서,
꽉 닫힌 문틈 사이로 악취가 새어나올 때까지 누군가의 죽음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러니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수납장 옆 방 한구석엔 신발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게 마지막 유품이었다.
‘하늘에 신고 가시려고 신발을 놓아두셨나.’

아무것도 없는 집 안에서 치울 거라곤 작은 냉장고, 수납장, 하얀 재가 담긴 솥하나, 그리고 고인의 신발이 전부였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한데 겉옷이라도 한 벌 놔두시지.’
괜스레 코끝이 찡해 왔다.

남에게 피해를 줄까 싶어 직접 치우셨나.
치워줄 가족이 없어서 직접 정리하셨을까.
유품정리사 대신 생의 마지막 이삿짐을 스스로 싼 것 같았다.

담을 것도 없는 검은 봉투에 신발을 담았다.
들어 있는 것도 없는데 무게가 천근만근이었다.
혹여 폐가 될까 봐 지켜보고 계신 걸까.
그래서 이렇게 신발이 무거운 걸까.
얼마 되지도 않은 작업이었지만 어깨가 뻐끈했다.

참 외로우셨겠다 싶었다.
어련히 시간이 흘러 생의 끝자락이 알아서 찾아와주련만.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신발 한 켤레만 챙겨 떠났을까.

에디터

  • 김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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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청소부

    c_project@joongang.co.kr
    유품정리사 또는 특수청소부라고 불린다. 2009년부터 고독사, 자살, 범죄 피해 현장의 유품 정리와 특수 청소를 하고 있다.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거나 도태되는 많은 이들의 사연을 알리고자『떠난 후의 남겨진 것들』을 출간했다.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