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맞으며 중공군 막은 老兵 마지막 길, 美는 이렇게 예우했다
2024. 4. 30. 12:07ㆍ■ 국제/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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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 맞으며 중공군 막은 老兵 마지막 길, 美는 이렇게 예우했다
6.25 참전용사 퍼켓 대령 의회 조문행사
국방장관, 민주·공화 의회 지도부 총출동
“희생에 감사”
입력 2024.04.30. 05:39업데이트 2024.04.30. 11:48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적과 싸우기 위해) 자리를 지켰습니다. 1950년 11월 그 추운 날, 퍼켓 대령은 부하들과 조국을 위해 그 곳에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 용사를 위해 드디어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최고 무공훈장을 받고 지난 8일 세상을 떠난 6·25 참전 용사 고(故) 랠프 퍼켓 주니어(97) 미 육군 예비역 대령 조문행사가 29일 오후 미 연방 의회에서 열렸다. 이날 조문 행사에는 미 의회 지도부와 군 수뇌부들이 일제히 참석해 퍼켓 대령을 추모했다.
퍼켓 주니어 대령은 6·25전쟁 때인 1950년 11월 25일 평안북도 소재 205고지 진지를 6회에 걸쳐 사수하고 대원들 목숨을 구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다. 2021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이념 초월해 나라를 위해 싸운 용사 최고 예우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은 예산 및 이민 문제 등 온갖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대립을 멈추고 이념을 떠나 고인을 추모하는 데 자리를 함께 했다.
존슨 의장은 이날 연설에서 “퍼켓 대령의 모토는 ‘추운 날씨, 비가 오는 날씨, 누군가 당신에게 총을 쏘는 등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자리에 있으라’ 였다”며 “우리 모두는 미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신성한 전당에서 그의 삶과 희생을 기리며 퍼켓 대령과 그의 가족을 위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비범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깊은 사명감과 자기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것이 바로 미국의 가치관이다. 신은 그들의 개인적 헌신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존중해 주셨다”고 했다. 존슨 의장은 이어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도 옳은 일을 했다”며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열망해야 할 본보기”라고 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공화당)는 “그의 용기와 자기희생은 후대 군인의 마음에 영원한 유산이 될 것”이라며 “퍼켓을 추모하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그는 퍼켓 대령이 제8 레인저 중대 지휘관으로 있었을 때의 205고지 전투를 언급하면서 “그들은 10대 1로 수적으로 열세였다. 그럼에도 ‘레인저가 길을 이끈다(Rangers lead the way)’는 모토를 완전하게 구현하는 것을 상상하는 어렵다”며 “그는임무를 완수하고 병사들을 명예롭게 이끌기 위한 힘과 결의, 용기를 기도했을 것이며 그 기도는 이뤄졌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공화당 소속인 존슨 의장과 매코널 원내대표, 민주당 소속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와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나란히 자리에 앉아 고인을 추모했다. 당이 서로 다른 존슨 의장과 제프리스 원내대표가, 그리고 매코널 원내대표와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각각 조를 맞춰 고인의 유해에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의회 관계자는 “당을 떠나 조국을 위해 싸운 영웅에겐 진영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 등 200여명이 30분간 진행된 행사에서 자리를 지켰다. 이들의 연설에 유족들과 의원들 일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의사당 내부 중앙에 있는 2층 높이의 반구형 ‘로툰다홀’에서 열렸다. ‘의사당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공간으로 ‘국립조각상 홀’(National Statuary Hall)이라고도 부른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과 부통령, 상하원 의원 및 군 지도자, 참전 용사 등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인사들이 사망했을 때 이들의 유해를 안치해 조문을 받도록 하는 장소로 쓰인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등의 유해가 이곳에서 조문을 받았다. 자유 수호를 위해 몸을 바쳐 싸웠던 참전 용사를 위해 전현직 대통령 등에게 제공되는 수준의 예우를 제공한 것이다. 6.25전 참전 용사 가운데 미 연방 의사당에서 조문 행사가 거행된 것은 고인이 유일하다.
이날 행사는 명예 안장(lying in honor) 형식으로 진행됐다.
미 의회는 홈페이지에서 “미 연방의사당은 국가가 나라를 위해 충성했던 시민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장소로 여겨져 왔다”며 “대통령 등 정부 고위 관리 등은 국가 안장(lying in State)을 통해, 민간인들은 명예 안장의 형태로 유해를 안치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선 한국계 군인이 추모 노래를 불러 눈길을 끌었다. 미 육군 군악대 ‘퍼싱즈 오운’(Pershing’s Own) 소속 에스더 강 하사는 이날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의 추모사가 끝난 뒤 군악대 연주에 맞춰 찬송가 ‘저 장미꽃 위에 이슬’(In the Garden)을 불렀다.
강 하사는 서울 출생으로 4살때 미국으로 이민왔다. 그는 이날 본지와 만나 “(6.25에 참전한) 퍼켓 대령의 추모식이 열린다는 소리를 듣고 (행사에) 자원했다”고 했다. 강 하사는 “아버지가 목사여서 (오늘 부른 노래를) 어릴때부터 피아노를 치며 많이 불렀다”며 “이날 (한국계로서 6.25 참전 용사를 추모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매우 뜻깊었다”고 했다.
앞서 민주당의 샌포드 비숍 하원의원이 지난 12일 퍼켓 대령의 유해를 워싱턴DC의 연방 의사당에 안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대표 발의해 통과했다. 이번 결의안 발의에는 공화당의 스티브 워맥 의원과 마크 알포드 의원, 민주당의 로 칸나 의원, 패트릭 라이언 의원, 헨리 쿠엘라 의원 등 5명이 초당적으로 참여했다. 결의안은 “미국의 최고 훈격인 명예훈장을 수훈한 한국전쟁 참전 마지막 생존 용사 퍼켓 대령을 기리기 위해 의회에 유해를 안치해야 한다”며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리는 한국전에 참전한 570만 명 이상의 미군을 기리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
◇백악관, 바이든 취임후 처음으로 명예훈장 수여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 와중 백악관에서 퍼켓 대령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명예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1926년생인 퍼켓 대령은 1943년 이등병으로 입대했다가 2년 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제대하고, 1945년 육사에 입학했다. 이후 1948년 6월 소위로 임관했다. 6·25 전투에는 1950년 8월 26일부터 11월 26일까지 참전했다. 그는 1967년 7월부터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약 1년간 101공수부대에서 활약했고, 1971년 전역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그는 1992년에는 육군 레인저 부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당시 백악관은 A4 용지 기준 3장 분량의 보도 자료를 통해 퍼켓 대령의 이력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백악관은 “퍼켓 대령(당시 중위)은 1950년 미 육군 소규모 특수부대인 제8레인저중대를 이끌면서 용맹함과 대담함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했다.
1950년 11월 25일 낮 퍼켓 중위는 청천강 일대 205고지에서 전진하다 중공군의 박격포 및 기관총 기습을 받았다. 당시 23세였던 그는 적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근처 탱크에 올라갔다. 51명의 부대원들이 적의 위치를 파악해 반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부대원들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세 번이나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켰고, 결국 수백명의 중공군 공격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날 밤 중공군이 또 공격해왔을 때 퍼켓 중위는 수류탄 파편이 왼쪽 허벅지에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구조를 거부하고 전투를 지휘했다. 중공군의 추가 공격이 두 차례 이어졌지만 퍼켓 중위와 중대 대원들은 이들을 막아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 공격이 네다섯 차례까지 이어지자 이들의 탄약이 바닥났다. 그는 왼쪽 어깨도 심하게 다쳤지만, 대원들에게 “총검을 설치하고 공격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다음 날 새벽 중공군의 여섯 번째 공격에서 박격포 포탄이 퍼켓 중위 참호에 떨어지면서 그는 오른쪽 발을 심하게 다쳤다. 위생병이 오른발을 절단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나를 내버려두고 대피하라”고 명령했지만, 부대원들은 명령을 거부하고 그를 참호에서 구해냈다.
작년 4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오찬에서 윤 대통령에게 우리나라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거동이 불편한 그가 단상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자 윤 대통령이 직접 휠체어를 밀어주기도 했다.
앞서 이날 오전 10시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서도 퍼켓 대령 추모 행사가 한국전참전기념비재단(KWVMF) 주최로 약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공화당 소속 조니 언스트 상원의원, 민주당 소속 샌포드 비숍 하원의원, 조지프 라이언 미 육군 소장, 6·25전쟁 참전용사 등이 참석해 고인을 기억했다.
상원에서 의회 조문 결의안을 주도한 언스트는 “그가 주차장을 걸어갈 때 주차장에 있던 모든 병사가 멈춰서 경외심으로 걸아가는 것을 지켜봤다”며 “아들이자 아버지였고 친구였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를 레인저로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언스트는 여군 출신으로 이라크 전쟁 당시 쿠웨이트에서 복무했는데 퍼켓 대령으로부터 많은 응원을 받았다고 한다. 하원에서 같은 결의안을 낸 비숍은 고인이 살던 지역구 의원인데 “가족으로부터 사랑 받았고 미 군인의 전형적인 모범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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