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흑인 차 세워 수색하던 美 도시…韓 검사장이 만든 변화

2024. 1. 8. 07:04■ 大韓民國/대한민국인

[법조 한류]② 걸핏하면 흑인 차 세워 수색하던 美 도시…韓 검사장이 만든 변화 (daum.net)

 

[법조 한류]② 걸핏하면 흑인 차 세워 수색하던 美 도시…韓 검사장이 만든 변화

지난해 한국 법조계에 선물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 워싱턴 최대 카운티의 검사장 선거에서 역사상 처음 당선된 여성 소수인종 검사장이 한국계라는 것.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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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한류]② 걸핏하면 흑인 차 세워 수색하던 美 도시…韓 검사장이 만든 변화

이현승 기자입력 2024. 1. 8. 06:01

2011년 한인 첫 美 카운티 검사장 선출
유색인종·저소득층에 불리한 사법 제도 개혁
장비 불량하다고 차 세우던 관행 없애
돈 없어도 보석 가능하게 실험 나서

 

지난해 한국 법조계에 선물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 워싱턴 최대 카운티의 검사장 선거에서 역사상 처음 당선된 여성 소수인종 검사장이 한국계라는 것.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미국의 선출직 검사장은 소수인종, 특히 아시아인들에겐 문이 좁기로 유명하다. 한국계는 현재 단 2명뿐이지만 향후 더 많은 이들이 요직에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2024년 새해를 맞아 해외에서 어려움을 딛고 활약 중인 한인 법조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미등(尾燈)이 고장 났다고, 백미러에 뭔가 달아놨다고 경찰이 지나가는 차를 멈춰 세우는 일을 줄이겠습니다.”

 

2021년 9월, 미국 미네소타주의 인구 55만 도시 램지 카운티의 한국계 검사장이 밝힌 새로운 정책을 로이터, AP통신 등 주요 매체가 비중 있게 보도했다. 미국 주요 도시에선 경찰이 자동차 정비 상태가 불량하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정차(停車)시킨 뒤 수색해 경범죄를 적발하는 일이 흔했다.

그런데 미국에 거주하는 유색인종들은 이런 일이 백인보다 자신들에게 더 자주 일어난다고 느꼈다. 램지 카운티에 속한 세인트폴은 2020년 전 세계적인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을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발생지 미니애폴리스와 미시시피강을 두고 마주하고 있다. 40대 남성 조지 플로이드는 위조지폐를 사용한 혐의로 체포당하는 과정에서 경찰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했다.

2011년부터 램지 카운티 검찰청을 이끄는 존 최(한국명 최정훈) 검사장은 미국 사법 정책이 인종이나 소득계층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세인트폴에서도 2021년 경찰이 흑인이 탄 차를 멈춰 세우는 경우가 백인일 때보다 4배 많았다. 이에 최 검사장은 공공 안전과 관계없는 정차를 최소화하고, 하더라도 거기서 발견된 경범죄는 불기소를 원칙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약 2년이 흐른 작년 7월 램지 카운티가 발표한 정책 성과에 따르면, 공공 안전과 관계없는 이유로 정차시키는 행위(non-public-safety traffic stops)는 2022년 전년 대비 86% 줄었다. 장비 불량 등의 이유로 정차당한 건수가 모든 인종에서 감소한 가운데 흑인이 66.5%, 아시아인이 61.1%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이 기간 유의미한 범죄 건수 증가는 나타나지 않았고 교통 체증이 완화됐다는 응답.

미국 미네소타 램지카운티 법원에서 존 최 검사장. / 램지카운티 검찰청 제공

최 검사장은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간 한인 2세다. 이민 초기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에서 지낼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고 한다. 열심히 일해 자식을 뒷바라지한 부모 덕분에 법대에 진학할 수 있었고 지금은 미국에 단 2명뿐인 한국계 선출직 검사장이 됐다. 주민 66%가 백인인 램지 카운티에서 유색인종과 저소득층, 여성과 아동에 불리한 사법 정책을 개혁하는 일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있다.

그는 조선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공공 안전과 관계없는 법 집행기관의 정차 관행은 유색인종과 저소득층에 불균형하게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경찰과 사법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며 “제한된 치안 자원을 과속이나 음주 운전 등 공공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심각한 행위에 투입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최 검사장은 현지에서 미국의 선출직 검사장들 중에서도 사법 개혁에 관심이 많은 진보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200만달러(약 26억원)를 투입해 보석 제도를 바꾸기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할 예정이다. 보석은 범죄 혐의자를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구금하는 대신 일정액의 현금을 내면 풀어주는 제도다. 최 검사장은 이 제도가 저소득층에게 불공정하게 작용한다고 본다.

램지 카운티는 절도 등 경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내부 기준에 따라 평가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가 보석 여부를 결정하게 할 예정이다. 이들이 법정에 출석할 때까지 카운티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이 정책의 성과는 보석으로 풀려난 사람들이 도주하지 않고 법정에 제때 출석하는지에 달렸다. 램지 카운티는 수년간 경범죄 피의자를 대상으로 축적한 데이터를 토대로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램지 카운티는 최 검사장 재직 시기인 2019년 100여년 역사의 소년범 교정시설을 폐쇄한 것으로도 화제가 됐다. 이 도시에선 2005년부터 재범 위험이 높지 않은 소년범을 시설에 격리하는 대신 지역사회와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정책을 추진했다. 소년범을 교정시설에 수감시키면 오히려 또래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판단했다. 이 정책 성과로 교정시설에 입소하는 소년범이 2014년 71명에서 2018년 31명, 2019년 4명으로 줄었고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최 검사장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중시하는 한국의 직업윤리가 자신이 고위직에 오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의 뒷바라지라는 특권을 경험했고, 이를 되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내가 공직에 있음으로써 우리 지역사회의 젊은 아시아인들이 ‘나도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내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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