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칠순 맞는 엄마, 자식들의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2023. 11. 12. 11:13■ 인생/초고령화 사회

 

이달 칠순 맞는 엄마, 자식들의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chosun.com)

 

이달 칠순 맞는 엄마, 자식들의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이달 칠순 맞는 엄마, 자식들의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주말 김신회의 매사 심각할 필요는 없지 조정희 여사님, 칠순 축하해요 이 글 보신다면 조속히 연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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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칠순 맞는 엄마, 자식들의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주말]
[김신회의 매사 심각할 필요는 없지] 조정희 여사님, 칠순 축하해요… 이 글 보신다면 조속히 연락을

김신회 작가
입력 2023.11.11. 03:00업데이트 2023.11.12. 06:41
 
 
 
일러스트=한상엽

한 소녀가 있었다. 1954년 11월, 경남 하동에서 첫째 딸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도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동생들의 도시락을 챙기던. 툭하면 심부름시키는 엄마 몰래 집을 뛰쳐나가 해 질 녘까지 고무줄놀이를 하던. 배고프면 집 앞 섬진강 언저리에서 재첩을 따 먹고, 입이 심심할 때면 철마다 열매 맺는 뒷마당 나무를 올려다보던. 책과 음악을 사랑했고 영특한 머리로 공부를 곧잘 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원하는 만큼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스물두 살 여인이 된 소녀는 결혼해 서울로 왔고, 스물셋에 첫 아이를 낳았다. 이듬해에는 딸 둘의 엄마가 됐다. ‘새댁’은 이내 ‘아기 엄마’가 되었지만 여인은 자신을 따라오는 모든 호칭에 익숙지 않았다. 건너 건너 다 아는 사람들인 마을에 살던 사람이 도시 사람들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는지. 가슴이 답답할 때 집 앞에 논밭이나 강이 없으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연년생 아이 둘을 어려움 없이 키우는 법, 살림살이를 야무지게 꾸려나가는 법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여인에게는 꿈이 있었다. 자식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부모가 되지 않겠다는 포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까지는 보내겠다는 희망.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여인은 무작정 서점에 가서 책부터 찾았다. 부자, 돈, 노후 같은 단어가 빼곡한 책을 아무리 읽어도 가계는 더디게 나아갔지만, 여인의 끊임없는 헌신과 노력 덕분에 두 아이는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원하는 일을 하는 어른이 됐다. 그중 하나가 나다.

내 나이보다 한참 어렸던 엄마가 거쳐온 세월을 떠올리면 절로 아득해진다. 말없이 견뎌야 했던 일들이 나 때문은 아닐까. 당신의 고된 삶에 내가 큰 몫을 담당한 것 같아 슬퍼질 때도 많다. 그러면서도 종종 ‘나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잖아’라며 입을 삐죽인다. 힘겹게 살아오셨지만 나의 탄생과 나라는 존재만큼은 엄마에게 기쁨이었을 거라 믿고 싶다.

훈훈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우리 가풍과는 맞지 않기에 이쯤에서 줄인다. 엄마에 대해서는 눈물만큼이나 웃음도 많기 때문이다. 엄마의 장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는 재미있는 분이라는 것. 특이점은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까?”하고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대부분 재미가 없고, 당신은 전혀 의도치 않았던 부분에서 사람을 빵 터지게 만든다. 엄마가 이제껏 건강히 살아오실 수 있었던 이유 중엔 유머 감각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걸 물려받아 이제껏 안 죽고 산다.

 

엄마는 몇 년 전, 자식들이 큰맘 먹고 선물한 명품 가방을 남에게 줘버렸다.

그런데 진짜 마음에 드는 명품 가방은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꾸준히 들고 다닌다.

그 모습에 이를 악물며 깨달았다.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는 ‘명품백’은 따로 있구나.

다음엔 그 ‘명품백’으로 고르자.

 

엄마는 꽤 오랫동안 내가 결혼하길 바랐다. 연애에 관심이 없고 짝이 될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부모는 자식을 모른다. 관심 없지 않았고 안 만나지 않았다). 몇 년 전,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 인터넷이 고장 나서 남성 수리 기사가 방문한 적이 있다. 방문을 연 채 연결선을 보수하고 문제점 및 작동법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엄마가 문 앞으로 쓰윽 다가왔다. 이런저런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지켜보던 엄마는 가만히 방문을 닫고 자리를 떴다. 엄마는 왜 낯선 남녀가 함께 있는 방의 문을 굳게 닫았을까. 그 기사님에게는 죄송한 마음이다.

휴대폰 해외 로밍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외국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마다 안부차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한번은, 엄마에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외국이라 발신 번호도 온전치 않아 전화를 다시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여러 번 다시 걸어봐도 엄마는 끝내 반응이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해 부랴부랴 전화를 거니 그제야 받으셨다. 왜 그렇게 통화가 안 됐냐고 투덜거리니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보이스 피싱 같더라고.” 여행지에 머무는 내내 엄마에게 나는 보이스 피싱범이 돼 있었다.

나를 울게 하지만 그만큼 웃게 하는 엄마가 이번 달에 칠순을 맞이하신다. 하지만 식구들에게 부담 주는 걸 극도로 꺼리는 엄마는 칠순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전화를 안 받기 시작했다. 가족 모임도, 선물도 다 자식들 돈 쓰는 일이니 조용히 넘어가고 싶으신 거다.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묵묵부답. 엄마에게 당분간 딸들은 보이스 피싱범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내 인생 첫 번째 여자, 조정희 여사님. 칠순을 축하드립니다. 날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엄마의 칠십 년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워요. 앞으로의 인생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신다면 조속히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