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1. 13:36ㆍ■ 국제/전쟁과 평화
“한국군 다시 올까봐” 서둘러 한꺼번에 묻은 뒤엔… (daum.net)
“한국군 다시 올까봐” 서둘러 한꺼번에 묻은 뒤엔…
“다른 곳으로 (주검을) 매장할 시간이 없다. 한국군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그냥 빨리 매장하는 게 좋다고 했다.”
1966년 12월 빈호아 안프억 마을 족릉(숲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고개)에서 자행된 ‘빈호아 학살’로 할머니·어머니·언니·오빠를 잃은 응우옌티방(58)은 숨진 가족을 여전히 학살 현장에 묻어두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한국군이 곧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에 주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묻었다. 그렇게 6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지난 8월5일 빈호아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방이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곽진산 기자더러 몇몇 가족들은 무덤을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꺼번에 주검이 묻힌 탓에 유해가 자신의 가족인지 아닌지 식별이 어려워 이장이 불가능했다. 응우옌티방도 같은 이유로 이장을 하지 못했다.
빈호아 족릉에서만 마을 주민 총 61명이 죽었다. 학살 당시 2살이었던 응우옌티방은 다리에 총상을 입었지만,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족릉에 희생자들의 영혼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이 위령비 뒤편에는 응우옌티방 가족을 비롯해 당시 희생된 마을 주민들의 무덤이 놓여 있다. 빈호아의 총 7개 위령비 중 공동무덤이 함께 있는 위령비는 이곳이 유일하다. 지난달 3일 한겨레가 찾은 족릉 위령비 현장에는 무덤 수십 개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언덕에 있는 이 공동무덤 주변으로 풀들이 성인 허리춤까지 솟아 있었다. 바람이 풀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 8월5일 빈호아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방의 발에 당시 학살에서 입은 상처가 흉터로 남아 있다. 곽진산 기자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공동무덤인지 알기 힘들었다. 어떤 묘비엔 가족들의 이름을 같이 기록해 두기도 했지만, 묘비조차 없는 무덤도 많았다. 수풀을 헤치자 한국군의 학살을 증명하듯 ‘남조선 군대’(Nam Trieu Tinh)라 선명하게 쓰여 있는 묘비가 보였다.
족릉 학살은 ‘주민증’을 지닌 이들에게 향했다는 점에서 다른 학살과 다르다. 당시 한국군은 민간인과 혁명군(베트콩)이 섞여 있을 수 있단 생각에 마을 주민들에게 베트콩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게 한 뒤 주민증을 발급했다. 그리고 주민증이 있는 사람만 마을에 거주할 수 있도록 했는데, 족릉 학살은 이런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한국군은 “주민증이 있는 사람들만 모이라”고 했고 이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베트콩이 아니라고 식별해 놓고 죽인 셈이다. 한국군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마을 주민들은 알지 못한다.
지난 8월3일 베트남 꽝응아이성 빈호아 족릉 위령비 뒤편으로 놓인 학살 희생자들의 묘비. 곽진산 기자응우옌티방의 이모는 주민증이 없어 마을에 들어오지 못했고, 그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응우옌티방은 죽은 어머니 곁에서 젖을 물고 있는 채로 발견됐다. 이모는 응우옌티방을 치료하기 위해 다른 한국군 주둔지로 이동했다. 두려움에 ‘족릉’에서 왔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간단한 치료만 받고 응우옌티방은 미군 주둔지로 옮겨졌다.
치료를 마치고 빈호아로 돌아와선 마을을 떠났다. 집도 가족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나는 아팠다. 이모는 그런 나를 부양하려고 뭐든지 했다. 베트남이 해방될 때까지 그렇게 하셨다.” 응우옌티방은 뒤늦게 이모로부터 학살 당시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다리를 스친 총알 때문에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빈호아(꽝응아이성)/곽진산 기자 kjs@hani.co.kr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통역 응우옌응옥뚜옌(다낭대 한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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