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은 왕위의 필수 조건… 소총 들고 진흙탕 뒹구는 공주들

2023. 9. 5. 13:29■ 국제/지구촌 인물

 

‘군필’은 왕위의 필수 조건… 소총 들고 진흙탕 뒹구는 공주들[Global Window] (daum.net)

 

‘군필’은 왕위의 필수 조건… 소총 들고 진흙탕 뒹구는 공주들[Global Window]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의 장녀이자 왕위 계승서열 1위인 레오노르(17·사진) 공주가 지난달 스페인 사라고사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존하는 20여 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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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필’은 왕위의 필수 조건… 소총 들고 진흙탕 뒹구는 공주들[Global Window]

황혜진 기자입력 2023. 9. 5. 09:06수정 2023. 9. 5. 09:51

 
■ Global Window - 여성도 열외 없는 ‘왕관의 무게’
스페인 왕위서열 1위 레오노르
육사 입교… 3년간 육해공 훈련
첫 벨기에 여왕 될 엘리자베스
타이어 들고 스쾃 화제되기도
노르웨이 알렉산드라 탱크 운전
네덜란드 아말리아 17세에 복무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평가
“왕실 폐지 방패로 활용” 분석도
세계 왕실 가운데 여성 군주를 인정하는 곳에선 왕위를 계승할 공주의 군 훈련이 필수 코스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은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는 스페인 레오노르 공주(왼쪽 첫번째).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의 장녀이자 왕위 계승서열 1위인 레오노르(17·사진) 공주가 지난달 스페인 사라고사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존하는 20여 개 세계 왕실 중 여성 군주를 인정하는 곳에선 스페인처럼 공주가 군사 훈련을 받는 일이 일상적이다. 명목상 국왕이 군대의 총사령관을 겸하는 군주국의 왕위 계승자는 성별을 떠나 군사 훈련을 받고 군 경력을 갖도록 한 전통에 따른 것이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선 공주에게도 예외가 없는 ‘왕관의 무게’인 셈이다. 일각에선 구시대 유물로 불리며 폐지 압박을 받고 있는 군주제를 지켜나가기 위한 왕실의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육·해·공 훈련받는 스페인 왕위서열 1순위 공주 = 레오노르 공주는 지난달 17일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와 레티시아 왕비, 여동생 소피아 공주의 배웅을 받으며 스페인 사라고사의 육사에 입교했다. 레오노르 공주는 사라고사 육사에서 1년간 훈련을 받은 뒤, 내년에는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해 1년간 해군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 해군 훈련선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를 타고 해외 방문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 1년은 공군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는다.

당시 펠리페 6세는 맏딸을 보내며 “이제 레오노르(가 전통을 이을) 차례”라며 “처음 며칠은 힘들겠지만 노력과 인내로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마르가리타 로블레스 스페인 국방부 장관도 레오노르 공주에 대해 “군에 입대하는 수많은 여성 중 한 명”이라며 “적절한 과정(군 경험)을 거친 여성이 미래의 총사령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탁월한 패션 감각을 보였던 레오노르 공주의 입소 후 화장기 없는 얼굴과 질끈 묶어 올린 머리, 군복 차림으로 입교생들과 훈련을 받는 모습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스페인 매체들은 “레오노르 공주가 즉위하게 되면 6대조 할머니 이사벨 2세(재위 1833∼1868년) 이후 약 200년 만에 스페인의 여왕이 된다”며 주요 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벨기에 공주. 벨기에 왕실 제공

◇진흙탕 뒹굴며 탱크 모는 ‘군필’ 공주 = 유럽에선 스페인과 함께 벨기에, 노르웨이, 네덜란드에서 공주가 왕위 계승 1순위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의 장녀로 왕위 계승 1순위인 엘리자베스(21) 공주는 18세 때인 2020년 왕립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성실하게 받아 화제를 모았다. 벨기에에서도 군주는 군 최고사령관 직위를 부여받기 때문에 왕위 계승권자는 군사 경험을 쌓아야 한다. 공주의 아버지인 필리프 국왕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특히 위장 물감을 얼굴에 칠한 공주가 자동소총을 들고 달리는 동영상은 SNS에서 인기를 끌었다. 벨기에 최초의 여왕이 될 엘리자베스 공주는 동기 160여 명과 함께 흙바닥을 뒹굴어 화제가 됐다. 그는 타이어를 들고 스쾃 동작을 하거나 완전군장 차림으로 행군했다. 또 식사배급, 청소 등도 다른 생도와 똑같이 맡았다. 경호원이 한 명 있다는 점만 빼면 ‘공주님 대우’는 없었다. 당시 감독관도 “공주와 함께하는 것은 영광이지만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한다”며 “공주는 다른 모든 학생과 마찬가지로 이름이 아닌 성(姓)으로 불린다”고 했다.

잉리드 알렉산드라 노르웨이 공주. 노르웨이 왕실 제공

노르웨이 여왕 후보인 잉리드 알렉산드라(19) 공주도 육·해·공 군사훈련을 받았다. 탱크에 탑승해 운전하고 부대원을 대피시키는 등 훈련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함정 중 하나인 노르웨이 왕립 해군(KNM) 초계함을 타고 해군 훈련도 수행했다. 올해 1월엔 “인생의 버킷리스트(꼭 하고 싶은 일 목록)”라며 낙하산 강하 훈련 사진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카타리나 아말리아 네덜란드 공주. 네덜란드 왕실 제공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의 장녀이자 왕위 계승 1순위인 카타리나 아말리아(19) 공주는 17세 되던 해 소집통지서를 받았다. 네덜란드엔 병역 의무는 따로 없으나 남녀를 불문하고 17세 이상의 국민은 유사시 소집될 수 있는 리스트에 등록되는데 공주도 예외는 아니다. 유사시 언제든지 군복을 입게 될 수 있다.

◇군 복무 적극 홍보하는 왕실 = 유럽에서 왕족의 군사 훈련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왕실의 군 복무를 사회 상류층이 모범을 보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평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엔 공주 입대가 왕실 폐지 여론을 막기 위한 방패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 상황 악화 속에 막대한 예산을 잡아먹는 왕실을 폐지하자는 여론을 막는 데 공주의 입대가 큰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국가 방위에 성역이 없다는 ‘평등’을 강조하면서 국가 통합과 군 최고 통수권자인 왕의 권위를 높이는 데도 유용하다.

스페인 왕실은 레오노르 공주가 군복을 입은 채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사진을 입교한 지 하루 만에 일제히 언론에 배포했다. 이는 스페인이 유럽에서도 왕실 폐지 여론이 높은 국가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엘파이스 등 현지 언론은 레오노르 공주가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을 한 채 다른 생도들과 똑같이 군사 훈련을 받는 모습이 왕실에 대한 호감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했다. 공주가 군사 훈련을 받은 벨기에와 노르웨이 등에서도 모두 왕실이 직접 사진을 적극적으로 배포했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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