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1. 16:23ㆍ■ 자연 환경/재해 재난
국보급 성당 죄다 무너졌는데 집창촌만 멀쩡…지독한 대지진 아이러니 [사색(史色)] (daum.net)
국보급 성당 죄다 무너졌는데 집창촌만 멀쩡…지독한 대지진 아이러니 [사색(史色)]
[사색-8] 무거운 재난이 무고한 시민을 덮쳤을 때, 무력감이 우리를 엄습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 삶에 대한 회의가 마음속을 가득 채웁니다. 튀르키예에서 벌어진 대지진을 보면 든 생각입니다.
문명의 눈부신 발전에도 인간은 자연의 힘 앞에 무너집니다.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신의 자리에 올라선 인간’이라는 자찬은 얼마나 알맹이가 없는 말인지를요.
지난 6일(현지시간) 튀르키예와 시리아 접경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집을 잃었다. <사진제공=월드비전>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었습니다. 그날은 11월 1일 ‘모든성인대축일’(All Saints‘ Day), 유럽에서 가장 성스러운 도시로 통한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였습니다. 모든 신앙인이 경건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습니다. 가톨릭을 위해 한 몸 희생했던 성인들을 기리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의 한명은 성직자였던 가톨릭 신앙 도시 리스본은 더없이 평화로웠습니다.
리스본 대지진을 묘사한 19세기 삽화. 건물이 종잇장처럼 무너지고, 해일이 일렁이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됐다.그리고 오전 9시 40분. 굉음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땅이 쩍 갈라지고, 가족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모래성 마냥 무너졌지요. 남녀노소 모두 생존을 위한 절규가 시작됐습니다. “신이시여, 제발 살려주소서.”
성당도 구원의 공간이 되지 못했습니다. 미사가 열리는 성소(聖所) 역시 지진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성체(聖體)도, 십자가도, 예수님을 그린 성화도 맥없이 쓰러졌지요. 제대에 놓인 촛불이 목재로 옮겨 붙어 화마가 신도들을 덮쳤습니다.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그리스도가 임재하는 공간에 펼쳐집니다. 지독한 아이러니였습니다.
카르모 수도원은 여전히 1755년 대지진의 흔적을 품고 있다.생존자들은 건물의 잔해 속에서 구원을 찾았습니다. 리스본은 해양 도시였습니다. 바다만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지요. 속절없이 무너지는 도시 안에서는 생명의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시의 젖줄이었던 바다로 향했습니다.
리스본의 모든 생명이 해안에 모였습니다. 자식의 손을 잡고 먼지를 뒤집어 쓴 사람들, 노인을 부축한 젊은 부부, 미사를 집전하는 성직자, 주인 옆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까지. 그러나 그곳에도 신은 없었습니다. 대지진이 만들어낸 쓰나미가 해안가를 덮쳤지요. 지진 발생 40분 후였습니다. 지진으로 죽거나, 불에 타 죽거나, 해일에 휩쓸려 죽었습니다. 악인과 선인,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은 무차별 대학살이었습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1755년 대지진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지진 발생 12시간 후 아메리카 대륙 북단부터 남아메리카 브라질 지역까지 쓰나미가 닥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대지진 7개월 전에 문을 연 리스본 오페라 하우스(Opera do Tejo)도 불에 탔습니다. 250년 동안 왕의 거처였던 리베이라 궁전도, 가톨릭 성지였던 리스본 대성당도 지진과 쓰나미로 파괴됩니다. 인류의 지식과 예술이 담긴 7만권의 도서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포르투갈이 소장하고 있던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 루벤스, 코레조의 작품도, 대항해 시대를 이끈 바스코 다 가마의 탐사기록도 볼 수 없게 됐지요.
화가 주앙 글라마 스트로베를레가 묘사한 작품 ‘1755년 지진의 알레고리’. 상단에 불의 칼을 들고 있는 천사의 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지진을 신의 심판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리스본 국립고미술관 소장.지진은 끔찍한 상흔을 남겼습니다. 리스본 중심지를 초토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포르투갈 최남단 알가르베에서도 무너진 집과 성당이 여럿 목격됐습니다. 충격파가 북유럽의 핀란드까지 전해졌을 정도입니다. 영국 남부 해안의 콘월 지방에서도 3m 높이의 쓰나미가 닥쳤다지요. 지질학자들은 이 지진으로 대서양 건너 브라질까지 쓰나미가 닥쳤다고 보고합니다. 진앙에서는 얼마나 끔찍한 재앙이 펼쳐졌을지 감히 상상하지 못합니다.
대지진 이전 리스본의 모습. 1700년대 중반 작품으로 영국 출판업자 로버트 세이어에 의해 1752년 발행됐다.이 지독한 역설이 사유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신이 모든 일을 주재하신다”는 가르침에 철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삐뚤어진 인간을 향한 신의 심판”이라는 성직자의 목소리를 철학자들은 더 이상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리스본 대지진을 과학적으로 바라보고자 한 철학자였다. 1768년 요한 베커가 그린 초상화.후대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은 “독일 과학 지리학과 지진학의 시작”이라고 평했습니다. 물론 책의 내용은 뜨거운 가스로 가득찬 거대한 동굴의 이동이 지진을 불렀다는 둥 황당한 이론으로 가득합니다. 다만, 칸트 이후로 학자들은 이성과 지성으로 분석하기 시작했지요.
프랑스의 대표 사상가인 볼테르 초상화. 모리스 캉탱 드 라 투르가 그렸다.“신이 있다면, 리스본의 성당을 무너뜨리고 집창촌을 온전하게 둘 수 있겠느냐”는 메시지였지요. 전 유럽이 그의 사상에 열광합니다. 프랑스 사상가 디드로도 리스본 지진을 “우연한 지질학적인 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폐허가 된 카르모 교회 본당. 1775년 대지진의 처참함을 기록하기 위해 파괴된 모습 그대로 유지했다.절망 속 리스본에는 그러나 ’사람‘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국왕 주제 1세가 총리이자 폼발 후작이었던 카르발류와 힘을 모았습니다. 총리는 시신을 처리해 전염병을 막고, 이재민 구호에 나서야 한다고 주제 1세에 보고합니다. 왕은 총리에 전권을 맡기지요.
주제 1세는 폐허 속에서 약탈·방화 행위를 일삼는 야수 같은 자들을 처벌합니다. 도시 곳곳에 교수대를 세워 30명을 본보기로 목매달았지요. 선을 바로 잡고, 악을 벌함으로써 도시를 재건하고자 했던 셈입니다.
리스본을 재설계한 폼발 후작이자 총리인 카르발류 그림. 루이스 마이클 반 루와 클라우드 조세프 버넷 작품.ㅇ니콜라스 시라디, 운명의 날-유럽의 근대화를 꽃 피운 1775년 리스본 대지진, 에코의 서재, 2009년
ㅇ송태현, ’리스본 대지진을 둘러싼 볼테르와 루소의 지적 대결과 근대지식의 형성‘, 한국비교문학회 비교문학 70권, 2016년
<네줄요약>
ㅇ1775년 포르투갈 리스본에 ‘역대급’ 대지진이 일어났다. 왕궁과 성당이 무너졌지만, 집창촌은 무사했다.
ㅇ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과학적 사유를 시작했다.
ㅇ포르투갈 정치 리더들 역시 ‘대지진’에 관한 기록을 남겨 후대의 과학적 탐구를 도왔다.
ㅇ힘내라, 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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