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 대성공..한국미술 기회냐 위기냐

2022. 9. 5. 07:12■ 문화 예술/미술 그림 조각

 

'프리즈 서울' 대성공..한국미술 기회냐 위기냐 (daum.net)

 

'프리즈 서울' 대성공..한국미술 기회냐 위기냐

박물관이나 미술관 전시가 아니다. 판매 목적의 큰 미술 장터다. 그런데 나온 상품이 범상치 않다. 고대 이집트 미라가 담겼을 나무관도 있고,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진품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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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앞 200명 대기줄, 유모차 부대까지.. 수십억원 작품도 팔려

정상혁 기자입력 2022.09.04. 22:51수정 2022.09.05. 06:40

 
['프리즈 서울' 열풍.. 수천억 매출 예상]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 전시회
인파 대거 몰리고 흥행도 성공, 수십억 작품들 줄줄이 팔려
오세훈 서울시장 "내년 행사는 송현동 미술관 부지서 개최하자"

 

'프리즈 서울'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피카소(왼쪽)와 몬드리안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프리즈

 

“굳이 비행기 안 타도 여기 좋은 작품 많네요.”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열린 4일 코엑스 전시장, 런던 갤러리 리처드내기 부스 앞에는 200여 명의 대기 줄이 형성됐다.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의 그림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남녀노소, 유모차 부대도 여럿이었다. 수십억원을 우습게 호가하는 데다 국내에서는 볼 기회가 극히 드문 에곤 실레의 원화 및 드로잉이 대거 걸렸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존 에드워드 초상화 연구’), 앙리 마티스(‘녹색 숄을 걸친 누드’), 조르조 데 키리코(‘바닷가에 있는 말과 얼룩말’) 등 서양미술사 거장으로 진용을 완성한 아쿠아벨라 갤러리, 기원전 1000년 당시 제작된 황소 조각 등 고(古)미술로 꾸린 데이비드 아론 갤러리 역시 초만원이었다.

 

에곤 쉴레의 1911년작 수채화 'Semi-Nude with Coloured Skirt and Raised Arms'(45.7×31㎝). /리처드내기 갤러리

 

올해 처음 출범한 ‘프리즈 서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시장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다. 이날 미국 화가 조지 콘도의 신작 ‘Red Portrait Composition’ 주변도 크게 북적였다. “통제가 필요해 보인다”는 볼멘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국내 한 사립미술관이 지난 2일 개막과 동시에 구매(38억원)한 이 그림 바로 앞에는 이보다 더 비싼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리석 조각이 놓여 있다. 갤러리 관계자는 “사진 행렬 탓에 조각품이 다칠 뻔한 위기가 몇 번 있었다”고 했다. 인구 밀도가 너무 심화되자 프리즈 측은 갤러리에 작품 보호 인력을 급파했다.

열기는 판매 실적으로 이어졌다. 개막 당일, 전체의 10분의 1 수준인 갤러리 13곳이 밝힌 판매가액만 200억원에 달한다. 참여 갤러리는 모두 119곳. 마크 브래드퍼드 그림(‘Overpass’)이 약 25억원, 게오르그 바젤리츠 작품(‘정오의 X-레이’)은 16억원에 팔리는 등 ‘억’ 소리 나는 거래가 속출했다. 나흘의 행사 기간을 감안하면 총매출은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역대 국내 최대 기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일 프리즈 만찬장에서 “서울 종로구 송현동의 ‘이건희 미술관’ 부지를 내년 행사 개최지로 빌려줄 의사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르크 샤갈의 1964년작 ‘마을에서의 행진’(1964). /로빌런트+보에나

 

아트페어는 미술품을 파는 지극히 상업적인 공간이긴 하나, 세계적 브랜드 ‘프리즈’의 서울 진출이 현재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면면을 확보하는 시각적 풍요로 이어졌다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캐서린 번하드, 자데 파도주티미 등 국제적 신성(新星)을 본격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한 갤러리스트는 “해외 아트페어에서만 경험할 수 있던 분위기”라고 평했다. 다만 피카소 ‘술이 달린 붉은 모자를 쓴 여자’(680억원)나 게르하르트 리히터 ‘촛불’(204억원) 등 호객의 큰 흥미 요소였던 초고가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프리즈 서울’과 공동 개최되는 토종 아트페어 ‘키아프’(Kiaf)는 관심도 면에서 열세였지만, 나름의 기획력으로 저력을 입증했다. 이를테면 갤러리신라는 부스 벽면에 바나나 30개를 테이프로 붙여 놨다.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1억원에 팔리며 예술계를 뒤집어놨던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코미디언’)를 패러디한 것이다. 바나나는 개당 3만5000원이지만, 구매자가 바나나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경우 자유롭게 추가 요금을 낼 수 있다. 이준엽 디렉터는 “예술품의 가치를 되묻는 퍼포먼스”라며 “‘프리즈’라는 외적 팽창을 향한 일침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키아프 전시장 벽면에 부착된 개당 3만5000원짜리 바나나. /정상혁 기자

 

설치미술가 김수자의 작품으로만 부스를 채운 벨기에 갤러리 악셀페르포르트 역시 세련된 전시 구성으로 호평받았다. 또 학고재 부스에서 박종규 화가의 그림을 본 일본 21세기미술관 관계자가 “제일 인상깊었다”며 향후 전시 가능성을 띄운 것으로 전해진다. 입장객 및 대략의 판매액 수치는 전시 마지막 날인 5일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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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 대성공..한국미술 기회냐 위기냐

이은주입력 2022.09.05. 00:02수정 2022.09.05. 06:49
 

 

서울 코엑스에서 2일 개막한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에는 행사 3일차인 4일에도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 [뉴스1]

 

박물관이나 미술관 전시가 아니다. 판매 목적의 큰 미술 장터다. 그런데 나온 상품이 범상치 않다. 고대 이집트 미라가 담겼을 나무관도 있고,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진품 드로잉과 회화도 있다. 미술관에서나 보던 마르크 샤갈, 조지오 모란디의 아담한 작품도 있다. 작품 가격은 수십억원이다.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의 첫 한국 행사인 ‘프리즈 서울’(이하 프리즈)과 한국화랑협회가 여는 한국국제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이하 키아프)이 2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했다. 연일 성황이다. 개막일부터 VIP 관람객이 장사진을 이뤘고, 4일에도 전시장 입구는 관람객으로 북새통이었다. 코엑스 1층 A·B홀의 키아프에 164개, 3층 C·D홀의 프리즈에 110여개 등 300개 가까운 갤러리가 장터에 참여했다.

 

개막일부터 하루 1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한 하우저앤워스 갤러리. 전면에 보이는 38억원짜리 조지 콘도의 붉은 초상화는 개막 당일 한국 사립미술관에 판매됐다. [연합뉴스]

 

프리즈에는 세계 최정상 갤러리인 가고시안·하우저앤워스·리슨갤러리 등이 참여했고, 고지도와 서적, 심지어 고대유물을 취급하는 갤러리도 나왔다. “이런 작품을 서울에서 볼 수 있다니” 등 곳곳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선보인 스위스 작가 우고 론디노네의 조각품. 하나에 2억2000만원짜리 이 작품은 세 점이 모두 판매됐다. [연합뉴스]

 

개막일 저녁에 국내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매출 기록이 나왔다. 세계 메가 갤러리 중 하나인 갤러하우저앤워스는 이날 조지 콘도(65)의 ‘붉은 초상화’(‘Red Portrait Composition’, 2022)를 38억원(280만 달러)에 판매했다. 국내 한 사립미술관이 샀다. 미국 작가 마크 브래드퍼드의 그림은 한 개인 컬렉터에게 24억5000만원(180만 달러)에 팔렸다.

 

프리즈에서 국제갤러리가 선보인 김환기의 1973년 회화 ‘고요’. 한국 미술의 자존심을 보여주듯 전면을 장식했다. 2017년 4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65억 5000만원에 낙찰된 작품이다. [연합뉴스]

 

수억~십수억원대 작품이 줄줄이 판매됐다. 리슨갤러리에선 거장 아니쉬 카푸어 작품이 10억원,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선 안토니 곰리의 작품이 약 8억원(50만 파운드), 게오르그 바셀리츠 회화가 16억3000만원(120만 유로)에 팔렸다. 국내 12개 화랑이 프리즈에 참여했는데, 그중 하나인 국제갤러리가 박서보 회화 1점을 7억원, 하종현 작품을 5억원, 알렉산더 칼더 작품을 5억원에 판매했다.

 

프리즈에서 작품을 보는 관람객. [연합뉴스]

 

사이먼 폭스 프리즈 대표는 4일 “프리즈 서울은 우리 기대를 뛰어넘었다”며 “서울의 에너지는 대단했고, 참여 갤러리와 세계 방문객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우리는 벌써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리즈에서 남춘모, 김택상, 김근태, 이진우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한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는 “프리즈에서 작품이 완판될 정도로 실적이 좋았다. 미국과 홍콩 컬렉터들에게 판매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우리 목표는 판매 자체는 아니었다. 외국에서 온 갤러리와 미술관 관계자들과 만나 해외 전시를 논의한 게 진정한 성과”라고 말했다.

박서보와 이배 작가를 전면에 내세워 주목받은 조현갤러리 최재우 대표도 “프리즈는 우리에게 힘을 실어준 큰 기회였다”며 “서울에서 세계적 행사가 열리니 해외 거물급 인사를 연이어 만날 수 있었다. 당장 밝힐 순 없지만, 해외 유수 미술관과 전시 계획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애콰벨라 갤러리가 출품한 파블로 피카소의 1937년작 ‘ 울이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 작품가가 한화 600억원에 달한다. [사진 프리즈]

 

프리즈에 맞춰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LA카운티미술관(LACMA), 뉴욕현대미술관(MoMA), 영국 테이트미술관 등의 관장이 방한했다. 이들은 일정을 쪼개 이건용, 김구림 등 중견작가를 직접 만났고, 리움미술관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일대 미술관·갤러리를 찾아 전시를 관람했다.

문제는 키아프다. 프리즈와 키아프는 공동 주최를 내걸었지만, 키아프는 부대 행사 같았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키아프전시작은 역부족이었다. 3일 키아프에서 만난 한 갤러리 대표는 “3층에서 우리 작품을 선보여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나란히 열리니 확실히 주목을 덜 받는다. 키아프가 여러 면에서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앞으로 키아프가 프리즈의 위성 장터가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조현갤러리가 선보인 김종학 화백의 ‘랜드스케이프’. [사진 프리즈]

 

같은 기간 세텍에서 열리는 위성 페어 ‘키아프 플러스’도 관람객이 적어 화랑협회가 마음을 졸였다. 황달성 화랑협회장은 “안타깝지만 예상한 일이다. 키아프가 세계적인 페어와 갑자기 동급이 될 순 없다. 뼈아픈 현실이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면서도 “한국 미술이 세계 시장에서 이렇게 주목받은 것도 처음 아니냐”고 말했다.

프리즈와 키아프에 모두 부스를 연 학고재 갤러리 우찬규 대표는 “한국 미술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미술이 성장하고 성숙하려면 우리 컬렉터가 외국 작가 작품을 사는 데 주력하는 것으론 안된다”며 “국내 컬렉터가 한국 작가에 애정과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세계에서 주목받는 스타 작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프리즈와 키아프를 모두 돌아본 한 미술계 관계자는 “무한경쟁의 문이 열렸다. 한국 화랑들은 잘 살아남거나, 사라지거나 하는 기로에 섰다”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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